미국 하원이 4일(현지 시간) 북한 김정은 정권의 자금줄을 전방위로 차단하는 내용의 ‘대북 차단 및 제재 현대화법’(H.R.1644)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하원은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을 찬성 419명, 반대 1명으로 처리했다. 상원도 조만간 이 법안을 표결할 예정이어서 빠르면 이달 내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정식 발효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 하원이 지난해 대북제재법을 통과시킨 지 1년여 만에 역대 최강의 대북 제재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북핵 위협에 초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법안은 그동안 국제사회가 요구했지만 중국 등의 반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들어가지 못한 조치를 대부분 포함시켰다.
우선 북한에 원유 및 석유제품의 판매와 이전을 금지했다. 인도적 목적의 중유는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재원 차단을 넘어 경제 기반을 뒤흔들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제정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 2270호는 항공유 수출만 금지했다.
또 북한의 해외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고 미국 관할권 내 자산 거래를 금지했다. 북한 노동자들이 평양으로 보내는 달러가 핵·미사일 개발의 주요 재원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와 함께 외국 은행들이 북한 금융기관의 대리 계좌를 유지할 수 없도록 했다. 최근 북한 은행들이 글로벌 달러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됐지만 중국 위안화, 러시아 루블화 등으로 차명 계좌를 만들어 음성적으로 외국 은행과 거래하자 모든 금융 채널을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통과된 현행 대북제재법은 제재 대상을 ‘개인’ ‘기관’ 등으로 애매하게 규정했으나, 이번에는 ‘외국(foreign)’으로 명시해 제재의 실질적 대상이 북한 대외 교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임을 확실히 했다. 북한에 원유를 공급하고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고, 금융 거래를 허용한다는 이유로 중국 기업과 개인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시행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이 법이 상원을 통과하더라도 실효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중국이 북한 붕괴를 가져올 원유 공급을 중단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데, 미국이 중국 국영기업 등을 제재하면 이는 미중 간의 경제적 전면전을 의미한다. 북한 당국이 해외 노동자 송출로 연간 벌어들이는 금액은 3억 달러 미만이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외교적 마찰을 감수하고 제재에 나서기에는 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상황이다.
중국은 미 하원의 대북 제재 법안 통과에 대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하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5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어떤 국가든 자국의 법을 근거로 다른 국가를 단독으로 제재하는 것을 결연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4일 워싱턴에서 미-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외교장관 회의를 하고 북한에 대한 경제, 외교적 관계 축소를 공식적으로 촉구했다. 미 국방부는 이란-북한 간 군사적 커넥션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폭스뉴스가 이날 보도했다. 미 국방부는 이란이 2일 요노급 소형 잠수함에서 처음으로 순항 미사일 발사를 시도한 것을 계기로 이란-북한 간 커넥션이 긴밀해지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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