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장미대선, 17대 대선과 판박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9일 16시 33분


코멘트
올해 ‘장미 대선’(19대 대통령선거)은 2007년 17대 대선과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1강 2중 2약의 5자 경쟁구도와 막판 여론조사(5월 2일 기준)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가 대권(大權)을 잡으면 10년 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는 점이 닮았습니다. 유력 후보의 정당이 보수에서 진보로 바뀐 것만 빼면 겉으로 드러난 대선 국면은 당시 상황과 판박이라 볼 수 있죠.

물론 현직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지는 첫 장미 대선인데다가 대선 최초로 사전투표가 허용됐고 부동층이 최대 30%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섣부른 판단은 금물일 수 있습니다.

먼저 무엇이 17대 대선과 닮았는지 후보별 경쟁 구도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1강: 문재인 → 이명박

“국민은 실용(實用)을 선택했다.”

10년 전 제17대 대선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압승으로 끝난 다음 날인 2007년 12월 20일, 대선 결과를 설명하는 동아일보 지면(A3면)에 실린 기사의 리드 문장입니다. 당시 1강 2중 2약의 후보별 지지율 구도 속에 치러진 대선 개표 결과는 이명박(48.67%) 정동영(26.14%) 이회창(15.07) 권영길(3.01%) 순으로 나타났죠.

이번 대선에선 2일 마지막으로 공표된 각종 여론조사업체의 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후보별 지지율은 당시와 비슷합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30%후반에서 40% 초반 사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사이의 지지율을 보였죠.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4%~11% 사이의 지지율을 나타냈습니다.

현재 각 후보를 17대 대선 후보로 치환한다면 문재인 후보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둘 다 여당의 초토화와 이로 인한 후광효과를 등에 업을 수 있었죠.
참여정부 말기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제4회 지방선거(2006년 5월 31일)에서 참패하며 수렁에 빠집니다. 당시 총 16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전북 1곳에서만 승리했죠. 기초단체장 또한 전체 230곳 중 단 19곳에서만 당선자를 내 그야말로 참패를 당합니다. 반면 같은 선거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광역단체 12곳 당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155석을 확보하며 여당을 압도했죠.

※ 관련 기사:동아일보 2006년 6월 1일 자 1면(열린우리당 선거사상 최악 참패)

지금의 분위기도 비슷합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쪼개졌고,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4¤13총선에서 전체 299석 중 120석을 얻어 제1 정당으로 자리매김했죠.

결국 지금의 문재인 후보나 당시 이명박 후보는 지난 10년간의 상대 집권 여당에 대한 심판자의 역할을 자임하게 됐죠.

※ 관련 기사: 동아일보 2017년 4월 29일 자 5면(일자리 강조하던 文, 1호 공약은 ‘적폐청산’)

그런 면에서 위의 “실용을 선택했다”는 본보 보도는 당시 이명박 후보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등을 비판하며 경제 파탄의 책임을 묻고 경제대통령이 되겠다고 주장했던 정황을 담은 한 줄이었습니다. 현재 문재인 후보가 ‘적폐 청산’이란 구호를 앞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겠죠.

○ 2중: 안철수 홍준표 → 정동영 이회창?

장미 대선 마지막 여론조사 발표(2일)에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지지율을 보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각각 정동영 후보와 이회창 후보로 바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2중에 해당하는 이들은 지지율 1위 후보를 향해 네거티브 공방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막판 지지율 역전을 위한 유세에 총력전을 펼쳤던 점이 유사합니다.

※ 관련 기사: 동아일보 2017년 5월 8일 자 1면(文 “과반의 힘 모아달라” 洪 “친북좌파 심판의 날” 安 “민심의 바다서 역전”)

먼저 문재인 후보의 턱밑까지 쫓아갔다가 TV 대선 토론 이후 지지율이 급락한 안 후보는 대선 막판 5일간의 ‘뚜벅이 유세’ 이후 또 한 번의 안풍(安風)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안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향해 “패권주의 정치를 일삼는 또 하나의 적폐 정치”라고 비판해 왔죠. 국민의당 의석수 40석으로 안 후보의 정치적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만 고려하면 정동영 후보보단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회창 후보와 비슷한 처지로 보입니다.

하지만 보수 성향이 짙었던 이회창 후보와는 달리 안철수 후보는 중도를 표방하고 있고 현재 중도·보수 성향의 부동층이 20~30%로 예상되어 투표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투표 1주일 전 지지율이 17.5%였지만, 실제 득표율은 26.1%로 8.6% 포인트 올랐다는 점은 안철수 후보가 끝까지 의지를 꺾지 않고 추격의 고삐를 당기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돼지발정제 논란, 여성설거지, 영감탱이 발언 등 언론과 여론의 도마 위에 여러 번 올랐던 홍준표 후보는 지속해서 안보 강화를 내세우며 상당수 보수 성향 유권자를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당시 “좌파 정권의 재집권 저지”라는 프레임을 앞세웠던 이회창 후보의 화법은 지금 홍 후보의 모습과 상당히 겹쳐지죠. 둘 다 법조인 출신에 당 대표(총재)로 보수 정당의 수장을 맡았다는 점 또한 닮았습니다.

다만 소위 ‘금수저’ 출신이었던 이회창 후보와는 달리 홍준표 후보는 자수성가했고 국회의원 시절에도 스스로 ‘아웃사이더’를 자칭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납니다. 막판 유세 총력전에서 홍 후보가 활용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이회창 후보 보단 풍부하고 파괴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2약: 유승민 심상정 → 문국현 권영길?

합리적 보수를 자처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 진보 정당 사상 처음 두 자릿수 득표율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지지율만 따진다면 17대 대선 당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와 연관지을 수 있습니다.

대선 직전 정당을 급조해 조직력이 약했다는 점에서 유승민 후보와 문국현 후보는 닮은꼴입니다. 하지만 ‘바른정단 의원 집단 탈당’ 사건 이후 동정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유승민 후보는, 초기 깨끗한 이미지로 인기몰이를 했다가 대선 후반기 자녀들의 재산문제로 이미지가 실추된 문국현 후보보단 뒷심이 더 강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 관련 기사: 동아일보 2017년 5월 6일 자 3면(“세어라 劉”젊은층 몰려)

심상정 후보는 TV 토론회에서 호평을 받고 호감형 이미지로 심블리라는 애칭을 얻었죠. 정의당의 전신이라 볼 수 있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전 대표가 노동운동이란 프레임에 갇혀있던 면이 있었다면, 심상정 후보는 그 프레임의 외연을 경제문제 전반으로 확장해 진보 정당 최고 지지율을 보일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죠.

※ 관련 기사: 동아일보 2017년 5월 1일 자 6면(沈 ‘진보정당 첫 두자릿수 득표율’ 될까)

○ 높은 투표율: 반쪽짜리 닮은꼴

후보 경쟁 구도가 비슷하긴 하지만 이번 장미 대선은 17대 대선과 반쪽짜리 닮은꼴일 수밖에 없습니다. 투표율 차이 때문입니다.

탄핵 사태 이후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장미 대선의 사전 투표율은 26.6%를 기록했죠. 지난달 25~30일 실시한 재외국민 투표에서도 역대 최다인 22만1981명이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또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투표 인증샷을 올리며 투표를 격려하는 분위기도 퍼졌죠.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최종 투표율이 80%를 넘어설지도 모른다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1997년 대선(80.7%) 이후 20년 만에 80% 고지를 넘어서게 됩니다.

반면 17대 대선의 투표율(63%)은 역대 최저였습니다. 이를 두고 보수 진영 후보의 1강의 구도 속에 마땅한 대체 후보를 찾지 못한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이 대거 이탈한 것 등의 해석이 나오죠. 장미 대선의 투표율이 80%를 넘어서고 17% 포인트 이상의 투표율 격차가 생긴다면 당시의 후보 경쟁 구도로만 결과 예측을 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 당선자의 윤곽은 예년보단 늦게 오후 11시 이후에 드러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후보의 경쟁구도는 닮았지만 투표율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장미 대선과 17대 대선, 그 결과는 판박이일까요 아니면 반쪽짜리 판박이일까요? 곧 그 결과가 공개됩니다.

※ 관련 기사: 동아일보 2017년 5월 6일 자 3면 (최종 투표율 80% 넘을 가능성)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