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대선은 여야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양자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다자대결 구도로 전개됐다. 여기에 초유의 대통령 파면 및 구속 사태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이다 보니 지역이나 이념대결 양상이 상대적으로 누그러졌다는 분석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위와 큰 표차로 당선되긴 했지만 다른 주요 후보들의 득표율도 눈여겨볼 대목이 많다. 특히 보수와 진보 진영의 극단적 대결을 거부하는 ‘신(新)중도층’의 표심도 어느 정도 확인됐다.
○ 판세 바꾸지 못한 ‘샤이 보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10일 0시 반 현재 26.4%를 득표해 2위를 달렸다. 홍 후보는 선거운동 막바지에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앞지른) ‘골든크로스’를 넘어서 승리의 길로 가고 있다”며 “이번에도 막판 보수 대결집으로 40% 대 38%로 이긴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후반전으로 접어들면서 홍 후보로 보수 세력이 일부 결집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지만 판세를 뒤엎을 정도로 ‘샤이(숨은) 보수’가 많지는 않았던 셈이다.
홍 후보는 개표 결과 방송 3사의 출구조사(23.3%)보다 더 많이 득표할 것으로 보인다. 출구조사에서도 일부 샤이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탄핵 열풍에 호남에서 1∼3%의 득표율을 올렸지만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20∼30%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정치적 확장성의 한계도 명확하게 드러냈다. 홍 후보의 2위는 지역으로는 ‘보수의 아성’이라는 TK, 세대로는 반문(반문재인) 정서가 강한 60대 이상에서 50% 안팎의 지지를 받은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출구조사의 연령별 예상 득표에서 홍 후보는 20대(8.2%)와 30대(8.6%)에서 한 자릿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 안철수 유승민 지지한 ‘신중도층’
안 후보는 선거운동 초반 문 대통령과 양강(兩强) 구도를 형성했지만 0시 반 현재 21.3%를 득표하며 3위에 머물렀다. 홍 후보가 막판 기세를 올리며 자신을 향했던 ‘반문’ 표가 분산된 탓이다.
그러나 광주전남에서 30%대의 지지를 얻은 것을 비롯해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20% 안팎의 고른 득표를 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총 득표율은 지난해 20대 총선의 비례대표 정당 지지율(26.74%)에 못 미쳤지만 당시 국민의당 약진을 이끈 ‘신(新)중도층’ 표심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게 재확인됐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0시 반 현재 6.5%로 4위에 올랐다. ‘마의 5%’를 넘지 못했던 여론조사보다는 큰 득표력을 보인 셈이다. 안 후보와 유 후보의 득표율을 감안하면 ‘극단 회피 심리’로 후보를 선택하는 신중도층이 전체 유권자 가운데 30%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이르진 못했다. 하지만 보수-진보로 양분됐던 정치 지형을 흔들 유권자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3위 후보가 20% 이상의 득표를 한 것도 1987년 직선제 개헌 직후 치러진 13대 대선 이후 처음이다. 당시 대선에선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36.64%로 당선됐지만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28.03%)와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27.04%)의 득표율도 20%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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