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 칼럼]오늘부터 시작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0일 03시 00분


누구에게 투표했든 기억할 것은 “대한민국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
운명공동체로 엮인 대통령과 국민… 최고의 대통령? 필요한 대통령!
최고의 시간 對 최악의 시간…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투표 이전보다 이후가 중요하다

고미석 논설위원
고미석 논설위원
‘다름’에 대한 ‘관용’으로 정평이 난 프랑스인에게도 새 대통령 당선인 부부는 파격적인 관계 설정으로 주목의 대상이다. 39세 대통령과 63세 대통령 부인을 보며 관습을 거부한 또 다른 선배 커플이 연상되었다. 장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둘의 관계는 ‘지성’과 더불어 ‘계약결혼’으로 늘 부각된다. 혼인이란 법적 기반 없이 평생 계약을 유지해 간 비결, 그 핵심은 바로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관계라는 점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대통령선거 역시 유사한 성격이 아닐까 싶다. 사회생활 자체가 사회계약이란 그물망 속에 존재하듯이. 5년마다 새로 뽑히고 뽑는 대통령과 국민은 운명공동체다. 누구의 실패가 나의 성취가 될 수 없고 누구의 불행이 나의 행복일 수 없는 이유다. 한배에 탄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과 취향이 달라도 노를 저을 때는 호흡 맞춰 한 방향으로 저어야 한다. 내 편을 위해 반대편 승객들을 편 갈라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람이라면 선장 자격이 없다. 승객을 버리고 배에서 가장 먼저 탈출하는 선장 못지않다.

한데 문제가 있다. 계약된 대통령이 자신이 선택한 후보냐 아니냐에 따라 한편에서는 기대에 찬 계약결혼으로, 다른 편에서는 불편한 강제동거로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이다. 후자라면 그 난감한 심정이 오죽할까. 그래도 다행히 그 계약 기간은 길지 않다. 해보고 또 바꾸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나 홀로 계약도 아니다. 어쨌거나 계약 쌍방은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공동체를 깰 작정이 아니라면 사사건건 트집 잡거나 억지로 상대의 생각과 행동을 교정시키려 들지 말아야 한다. 나는 선한 의지라 생각하지만 상대의 눈에는 독재로 보일 수 있다. 그럼 어떻게?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먼저라고 심리학 교본은 설파한다. 그런 소통은 입으로 외쳐서 되는 게 아니라 귀를 통한 경청에서 시작된다.

일상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의 하나가 권력 불평등 문제다. 우월해졌다 싶은 지위를 휘둘러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으면 관계에 멍이 든다. 혹은 쓸데없는 주도권 다툼에 골몰해봤자 모두 패배자로 귀결될 뿐이다. 그래서 19대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등 돌린 국민을 얼마나 포용할 수 있습니까?”

만약 항복을 받기로 작심한다면 임기 내내 소모적 갈등과 혼란을 자초하는 셈이다. 이는 물론 유권자의 태도에도 적용된다.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파탄 낼 만큼 지금이 한가한 시기가 아니란 인식 공유가 제1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대통령’의 꿈이 궁금하다. 인기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 그 힌트가 있는지 모른다. 좋은 의사인지 최고의 의사인지 묻는 질문에 주인공은 답한다. “지금 여기 누워 있는 환자한테 물어보면 어떤 쪽 의사를 원한다고 할 거 같으냐? 필요한 의사! 그래서 나는 나의 모든 걸 총동원해서 이 환자한테 필요한 의사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거창한 욕심보다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소박한 각오로 첫발을 내디디면 좋겠다. 개인적 소신을 고집하느라 나라를 연습장으로 만들며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엄중하다.

다양한 리더를 거치며 배운 것이 있다. 대통령과 국민의 다툼에 승자가 있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어느 편이 더 많이 상처받느냐만 있을 뿐. ‘취향의 공유’를 강요 말고 의견차를 인정하고 조율할 줄 아는 현명한 리더와 국민이 우리의 꿈이고 과제다.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투표가 44.7% 대 55.3%로 부결된 뒤 영국 여왕은 말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있었지만 스코틀랜드에 대한 사랑은 모두 같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나라를 반쪽 낼 듯 충돌한 2016년 브렉시트 투표 후에도 같은 메시지는 유효했을 터다. 우리는 이번 투표에서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작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첫 구절을 떠올려 본다.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쫓기듯이 달려온 속성 대선은 악성 먼지가 산천을 뒤덮은 가운데 끝났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투표 이전보다 이후는 더 중요하다. 험난한 지정학적 환경의 대한민국은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그리고 우리 모두는? 오늘부터 시작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필요한 대통령#대통령 선거#두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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