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과잉 업종으로 꼽히는 조선·해운·철강·석유 등 4개 업종을 놓고 새 정부가 구조조정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 산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선 현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도에 자리 잡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처리 문제다. 지난달 극적으로 채무재조정에 성공해 회생의 기회를 잡았지만 중장기 처리 방향은 미정이다. 문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해 국내 조선·해운 산업을 살리겠다. 한국 조선업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이 있다”고 강조해왔다. 대우조선은 새 정부에서도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대우조선 회생의 틀을 잡아 놓은 상황이어서 새 정부 들어서 그 방향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고용 집약 산업인 조선업은 대선 과정에서 지역 경제나 실업자 대책 중심으로 많이 언급돼 왔다. 반면 산업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강화 측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나 공약이 없었다. 문 대통령의 선거 정책공약집에도 조선·해운의 상생협력 구축에 나서겠다는 방향만 제시됐을 뿐 구체적인 방법론은 담기지 않았다.
향후 조선업 구조조정은 고용 안정과 지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방점이 찍힐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비상경제대책단은 3월 제3차 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해 △고용감축 최소화 △지역 내 경제 주체가 참여하는 협의체 활성화 △중소기업 배려라는 3대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다만 새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대우조선 부실의 책임을 물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선거운동 당시 “새 정부가 출범하면 거듭된 자금 지원에도 대우조선이 부실한 원인에 대해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왔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과 KDB산업은행, 대우조선 전·현직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작업이 진행될 수 있다. 민주당 비상경제대책단은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구조조정과 회생을 위해 제 역할을 전혀 못하고 부실을 키워 공적자금 투입만 늘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도덕적 해이와 재발을 막기 위해선 정부, 대우조선해양, 채권단 등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고 밝혔다. 한 국책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들의 역할 재편 움직임과 맞물린다면 파장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조선업계의 ‘수주 절벽’은 조금씩 해소되고 있다. 10일 영국 조선·해운 전문 분석기관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선박 수주량은 34만 CGT(표준화물선 환산 톤수·34척)로 3개월 만에 세계 1위 자리를 되찾았다. 한국에 이어 중국이 26만 CGT(13척)를 수주했고, 일본은 지난달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이른바 조선 ‘빅3’는 1분기(1∼3월) 흑자를 기록했다. 조선 빅3가 동시에 영업흑자를 낸 것은 5년 만이다.
철강과 석유화학의 구조조정 방향도 관심사다. 철강과 석유화학은 글로벌 과잉 공급으로 구조조정이 필요한 업종이지만 업황이 개선되면서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추진 중인 구조조정이 느슨해진 상태다. 철강업계는 자율적 구조조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스스로 진단하고 새 정부가 미국 등과의 통상마찰 문제 해결에 나서 줄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석유화학 업종도 저유가로 원가 경쟁력이 올라가면서 호황 국면을 맞고 있다.
하지만 ‘반짝 호황’에 취해 구조조정을 게을리 하면 결국 국제 경쟁력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년 전 외환위기 사태가 반면교사라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석유화학 등 국내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5년 뒤 중국에 따라잡힐 것이라고 경고하며 선제적 구조조정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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