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손수레 끌던 문변… 80년대에 직원들 토요 격주 휴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3일 03시 00분


[토요판 커버스토리]문재인의 사람들
문재인 대통령과 수십 년 인연 맺어온 그들 ‘내가 기억하는 인간 문재인’

《 그들이 기억하는 대통령 문재인은 어떤 사람일까. 짧게는 20년, 길게는 45년가량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이들은 “다른 사람과 달랐다”고 입을 모았다. ‘노무현, 문재인 변호사’ 간판 건물로 유명해진 남경복국집의 전 사장 이정이 씨(76·여)는 “양심과 정의를 가진 바른 사람”이라고, 고교 동문인 도선사 김수룡 씨(64)는 “따뜻한 친구”로 기억했다. 법무법인 부산의 경리실장 박다효 씨(55·여)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신 분”으로, 전 해고 노조원 박현우 씨(52)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신 분”이라고 했다. 이들은 “대통령이 돼 주셔서 고맙다”면서도 “주변에 휩쓸리지 말고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 줄 것”을 희망했다. 》


● 문재인 사무실 건물 남경복국집 이정이씨

“문변, 판검사에 식사접대 일절 안해… 6000∼1만원짜리 복국 자주 먹었죠”


9일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함께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았던 사진 속의 남경복국집 전 사장 이정이 씨(사진)를 수소문 끝에 11일 만났다. 이 씨는 문 대통령에 대해 “우리가 목숨을 걸고 은혜를 갚아야 할 정도로 정의로운 사람이다. 28년간 지켜봤지만 청렴결백해 나라가 부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과 이 씨의 인연은 1989년 동의대 사태 발생 당시 이 씨가 부산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공동대표로 진상 규명에 관여하면서다. 문 대통령은 학생 측 변호사로 참여했다.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함해 인권변호사가 많이 참여했지. 하지만 ‘문변(문재인 대통령)’이 일을 다 했지. 문변이 ‘변호사가 아무리 많아도 어머니가 나서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섰던 거야.”

당시 비정부기구(NGO) 활동에 열심이던 이 씨에게 문 대통령은 이런 말을 건넸다. “노동도 하지 않으면서 노동자를 위해 일한단 말입니까. NGO 대장 노릇을 하려면 장사(노동)를 해야지요. 공무원인 아버지(이 씨의 남편)가 벌어오는 돈으론 3일이면 바닥납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때부터 이 씨 내외를 “어머니, 아버지”로 불렀다.

이 말 때문에 그는 남경복국집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1992년 문변과 노변(노무현 전 대통령) 사무실 근처에 있던 4층짜리 남경복국집을 사 간판은 그대로 둔 채 장사를 시작했다. 문변과 노변을 포함해 젊은 변호사 7명도 이 씨의 제의로 십시일반 돈을 모아 이 건물 2, 3층에 합동법률사무소를 내 인권과 노동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우리 집에는 근처에 있던 법원 검찰의 판검사를 비롯해 대학병원 의사, KT 지역본부 간부가 와서 좋은 복을 많이 먹었어. 문변은 그렇지를 못했어. 다른 변호사들은 법원장이나 검사장이 왔다 하면 밥값을 계산했지만 문변은 한 번도 안 사더라고. 데려오지도 않았고, 그런 걸 못 봤어.”

문변은 점심이나 저녁 때 6000원(은복), 9000원(까치복)짜리 복국을 먹다 어떨 땐 1만 원(밀복)짜리 맑은 국물(지리) 복국만 먹었다는 게 이 씨의 기억이다. 문변에게 대접 한 번 못한 게 가슴에 남아 이번 선거 기간에는 힘내라고 양산 자택에 참복을 보냈다.

“후손들과 전쟁 없는 나라를 위해 앞으로 평화통일에 신경을 써 줬으면 좋겠어. 건강을 챙기면서 거짓 없는 나라사랑을 부탁하고 싶어.”

이 씨는 문 대통령을 “말수가 적으면서 깡다구(강단)가 있고, 이익이 없어도 저렇게 할 수 있나 할 정도로 고마운 분”이라고 했다.

● 법무법인 부산 경리실장 박다효씨

“사무실 운영 관련해 직원들 의견 경청… 책-신문서 좋은 글귀 보면 함께 대화”


법률사무소 직원들과 등산 ‘법무법인 부산’의 박다효 경리실장이 책상 서랍에 간직하고 있는 사진 중 한 
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앞줄 왼쪽)이 20여 년 전 법률사무소 직원들과 함께 등산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뒷줄 가운데 있는 여성이
 박 씨다. 박다효 씨 제공
법률사무소 직원들과 등산 ‘법무법인 부산’의 박다효 경리실장이 책상 서랍에 간직하고 있는 사진 중 한 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앞줄 왼쪽)이 20여 년 전 법률사무소 직원들과 함께 등산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뒷줄 가운데 있는 여성이 박 씨다. 박다효 씨 제공

“사무실 이사할 때 직원들과 함께 짐을 나르고 손수레도 직접 끌던 변호사였죠.”

11일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 앞 법조타운 건물 406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까지 몸담았던 ‘법무법인 부산’의 경리실장 박다효 씨(사진)는 30년 넘게 ‘변호사 문재인’을 지근거리에서 도운 인물이다.

“문 변호사님을 처음 만난 건 1982년 9월이었어요. 전 그해 1월에 노무현 변호사님 사무실에 취업했는데 일하러 오셨어요.”

1995년 설립된 법무법인 부산의 모태인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말한다.

문 대통령은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법률사무소를 떠나자 1990년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정재성(57·사법연수원 16기), 1992년 김외숙 변호사(50·여·21기)를 영입했다.

박 씨는 아직 ‘대통령’이라는 호칭이 어색하다며 줄곧 ‘변호사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그는 “당선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너무 벅찼다”고 말했다.

박 씨는 사무실 살림살이뿐 아니라 변호사가 손으로 쓴 소송 관련 원고를 타이핑하는 일도 해왔다.

“그분은 의뢰인뿐 아니라 직원들과 대화할 때에도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얘기를 잘 들어주었습니다. 소송 결과에 불만을 품고 항의하는 의뢰인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얘기를 들어주던 모습이 선합니다.”

박 씨는 문 대통령이 다른 변호사와 달랐다고 했다. 사무실에 중고 가구를 사도록 했고, 값이 저렴한 승용차를 탄 기억도 생생하다. 사무실 운영과 관련해서는 반드시 직원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직원 가족을 동반해 계절마다 전국의 명산을 함께 올랐다. 대부분 직장이 일요일에만 쉬던 1980년대 중반부터 토요일에도 사무실 직원들이 격주로 휴무를 실시했다.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박 씨는 문 대통령이 ‘사람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상대방이 일방적인 지시를 받는다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부드러운 표현으로 일을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연수를 다녀올 적엔 직원 선물을 챙겼고, 책이나 신문에서 좋은 글귀를 보면 함께 보고 의견을 나눴다고 했다. 소송에서 지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결코 화를 낸 적이 없다고 했다.

박 씨는 “처음 뵌 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변호사님께 전화를 드릴 때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버튼을 누른다”며 “늘 나를 존중해주신 분이어서 조심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누구보다 훌륭하게 일하실 분이란 걸 잘 압니다. 다만 어려운 시기에 일을 맡으셔서 조금 마음이 아픕니다.”

● 경남고 동창 김수룡씨

“3선 개헌 반대 시위때 ‘전진하라’ 소리쳐”


“똥구두야 전진하라.” 도선사 김수룡 씨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교 동기동창(25회)이다. 김 씨는 고교 2학년생이던 1969년 여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3선 개헌 반대 시위하러 나갈까 봐 학교 정문에 경찰들이 서 있을 만큼 살벌했죠. 아침에 교문을 막 들어서는데 아이들이 뛰쳐나왔어요. 그때 ‘전진하라’고 소리친 인물이 문 대통령입니다.”

그는 당시 경남고 학생들은 짙은 갈색의 워커를 신는 걸 전통으로 여겼고 자신들은 ‘똥구두’라 불렀다고 했다. 김 씨는 “그저 순하고 착한 친구인 줄만 알았는데 그날 강인한 모습을 봐 아직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과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매우 가깝게 지냈던 다른 친구를 통해서 문 대통령이 좋은 사람이란 걸 알았다고 한다.

그 친구가 바로 김정학 판사다. 김 판사는 문 대통령이 사업 실패 후 어려워하던 자신에게 사법시험을 볼 수 있게 지원했다는 일화를 공개해 화제가 됐다. 김 씨는 “재인이는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했던 정학이를 업고 소풍을 갔던 일화만 봐도 어떤 성품을 지닌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사람을 위하는 따뜻한 친구”라고 말했다.

● 前해고노조원 박현우씨

“선임비 없는 이에게 돈걱정 말라 하기도”


부산교통공사에서 기관사로 근무 중인 박현우 씨(사진)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던 문재인 대통령을 “많이 괴롭혔다”고 표현했다.

그는 1998∼2000년 부산·양산해고노동자투쟁위원회 위원장이었다.

박 씨는 “당시는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같은 많은 직업군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때였다”며 “그래서 그들이 억울하게 해고당해도 변론을 맡아 주는 변호사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1998년 부산지하철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가 이후 소송을 통해 복직했다. 그는 “노조조차 없어 우리 위원회를 찾아온 해직자와 함께 문 변호사에게 상담을 받으러 갔는데 한 번도 외면한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간혹 변호사 선임비용이 없어 머뭇거리는 사람에겐 ‘돈 걱정 하지 마라’고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박 씨는 “실제 소송 후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때도 있다고 들었지만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는 한결같았다”며 “고마운 분”이라고 기억했다.

부산=조용휘 silent@donga.com·강성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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