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文대통령, 盧 극복해 정부성공 이끌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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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文 ‘정치 안 맞는다’ 평가… 살아서 집권 봤다면 놀랐을 것
문 대통령 역사관 盧와 일치… ‘주류 교체’ ‘적폐 청산’ 집착
과거 되돌리려는 것 아닌가
朴, 아버지 못 벗어나 실패… 文, ‘盧 실패’ 뒤집으려 말라

박제균 논설실장
박제균 논설실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봤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무엇보다 문재인이 19대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입이 딱 벌어졌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을 ‘정치에 전혀 안 맞는 사람’으로 봤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총선에 출마시키라는 주변의 천거에 “저 사람은 정치할 사람이 아예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런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인사와 정책을 쏟아낸 것에 한 번 더 놀랄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오랜 시간 준비한 듯 속도감 있게 문재인 정부의 틀을 짜 나가는 중이다. 적어도 인사에 관한 한 시작은 괜찮은 편이라고 나는 본다. 골수 친문·친노로 주변을 에워싸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일정 부분 덜어낸 것만으로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전임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인사 하나하나를 질질 끌다가 발표가 나면 ‘어? 이건 뭐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기억이 생생한 터다.

문 대통령이 출입기자들과 등산을 하거나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모습은 여러모로 노 전 대통령과 겹친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말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점심 배식을 받다가 식판에 떨어진 콩나물밥을 무심코 집어 먹었다. 하필 그 장면이 찍혀 신문에 실렸다. ‘대통령이 소탈하다’는 게 중평이었지만 밥 먹는 데 소탈한 것과 국정 운영은 달랐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참여정부는 절반의 성공도 못했다.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라고 참담하게 토로했다. 그가 실패를 자인한 것과 달리 사후 노무현 주변에선 다른 목소리가 주(主)를 이룬다. 이른바 ‘주류세력’이라는 친일·부패·기득권 세력이 사사건건 노무현 정부의 발목을 잡아 노무현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1월 펴낸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우리 정치의 주류세력을 교체하는 것이 ‘역사적인 당위성’이라고 주장했다. 1945년 해방과 1987년 6월항쟁 때가 친일·독재세력과 그 부역자 집단을 단죄할 기회였는데, 그 두 번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친일→반공·산업화세력→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세력’으로 화장만 바꿔가며 우리 사회를 계속 지배하고 있다는 논리다. 이런 역사관이 소위 ‘적폐 청산’의 논거다.


선거 과정에서 ‘대통합’을 말했던 문 대통령의 본심은 선거운동 전 집필한 책에 더 오롯이 담겨 있다고 보는 게 맞다. 문 대통령의 역사관은 재임 시절 틈만 나면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대한민국 역사’ 강의에 열중했던 노무현의 역사 인식과 일치한다. 노 전 대통령이 선거 전략상 ‘재미 좀 봤다’던 행정수도 이전 공약도 주류 교체와 무관치 않다. 동서고금의 집권자가 기득권세력 교체를 기도할 때 내놨던 것이 천도(遷都)였다.

이 대목에서 ‘정치에 안 맞는 사람’이자 정치를 좋아하지도 않았던 문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고 대권까지 잡은 이유가 새삼 궁금해진다. 노무현의 실패와 좌절, 비극적 최후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문 대통령. 혹여 ‘노무현의 실패’를 성공으로 뒤집기 위해 정치하는 것은 아닌가. 이를 위해 그토록 주류 교체와 적폐 청산에 집착하는 것이라면 위험하다.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직후 성명을 내고 국정 교과서 등 ‘박근혜표 정책’ 집행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며 △비리와 부패와 관련된 공범자 청산 △사유화한 공권력 바로잡기 △권력기관 개조 △재벌 개혁 △언론 개혁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6대 과제’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이 로드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재벌과 검찰 개혁에 이어 우병우 민정수석실과 ‘정윤회 문건’, 세월호 재조사와 국정 교과서 중단 카드를 벌써 꺼냈다. 아직 안 나온 것은 언론 개혁이지만, 문 대통령 성격상 언제 가시화할지 모른다.

무릇 과거와 싸우면 미래를 잃기 십상이다. 필요한 개혁은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개혁의 목적은 과거를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여는 데 있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박정희 시대 대통령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실패했다. 문 대통령도 노무현을 극복해야 성공할 수 있다. ‘노무현 실패’를 성공으로 뒤집으려다 다시 실패의 전철을 밟을까 봐 걱정이다. 국민이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노무현 아닌 문재인 정부 성공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문재인 대통령#적폐 청산#노무현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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