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공직 맡지 않겠다”… 패권논란 싹 자른 ‘문재인의 남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7일 03시 00분


15일 靑관저 만찬서 전격 퇴장 선언

지난해 히말라야 트레킹 동행 지난해 6월 양정철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왼쪽)이 문재인 대통령과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의 모습. 오른쪽은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양 전 비서관은 16일 “공직을 맡지 않고 퇴장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지난해 히말라야 트레킹 동행 지난해 6월 양정철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왼쪽)이 문재인 대통령과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의 모습. 오른쪽은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양 전 비서관은 16일 “공직을 맡지 않고 퇴장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인 양정철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이 16일 “공직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양 전 비서관은 뉴질랜드에서 장기간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 양 전 비서관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 관저에서 양 전 비서관을 포함해 임종석 비서실장,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 등과 3시간 동안 만찬을 가졌다. 당선의 일등 공신인 이들을 격려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양 전 비서관은 “국정 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공직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대선 기간 내내 ‘궂은일’을 도맡아 온 양 전 비서관의 ‘깜짝’ 신상 발언에 문 대통령도 결국 눈물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한 측근은 “양 전 비서관은 공직을 맡지 않겠다는 내용의 글을 미리 작성해 놓고 만찬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한 참석자는 “만찬 뒤 청와대 인근 식당에서 가진 술자리에서 양 전 비서관이 말없이 술만 연거푸 들이켰다”고 했다. 양 전 비서관은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남은 여러분들이 정말 잘해야 한다”고 부탁한 뒤 16일 오전 1시 기자들에게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문자메시지로 보냈다. 그는 “새 정부가 원활하게 출범할 수 있는 틀이 짜일 때까지만 소임을 다 하면 제발 면탈시켜 달라는 청을 처음부터 드렸다”며 “그분(문 대통령)과의 눈물 나는 지난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제 저는 퇴장한다”고 밝혔다. 또 “저의 퇴장을 끝으로, ‘패권’이니 ‘친문(친문재인)’ ‘친노(친노무현)’ 프레임이니 ‘삼철’(양 전 비서관, 이호철 전 민정수석, 전해철 의원)이니 하는 낡은 언어도 거둬 주시기 바란다”며 “멀리서 그분을 응원하는 여러 시민 중 한 사람으로 그저 조용히 지낼 것”이라며 “잊혀질 권리를 허락해달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 전 수석은 “자유를 위해 먼 길을 떠난다”며 대선 다음 날 부인과 함께 동유럽으로 갔고, 전 의원도 주변에 정부 자리를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비서관과 전 의원은 16일 저녁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이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는 통합과 포용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 2011년 문재인 자서전 ‘운명’ 기획한 복심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양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문 대통령을 정치에 입문시키는 데 관여한 핵심 측근이다. 그는 2011년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의 출간을 기획했다. 이 책의 서문에서 문 대통령은 “자료를 만들어 주느라 고생한 양 전 비서관에게 특히 고마움을 전한다. 그 작업이 없었으면 나는 책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양 전 비서관은 ‘문재인의 남자’로 거듭나게 된다. 문 대통령의 2012년 대선 도전, 2015년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 출마, 2017년 대선 캠프 준비 등을 모두 기획했다. 임 비서실장, 송영길 의원, 윤영찬 국민소통수석비서관 등 문 대통령의 당선을 도운 외부 인사 영입도 양 전 비서관의 작품이다. 송 의원에게는 지역구(인천)까지 찾아가 “선거 과정에서 언제든지 필요하시면 제 목을 치시라”고 고개를 숙였다. 또 비서실 부실장을 맡아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임 비서실장을 깍듯하게 모셨다. 한 친문 의원은 “문 대통령의 옆자리를 스스로 임 비서실장에게 내준 셈”이라고 했다.

○ 여권 “다른 친문들도 선뜻 공직 못 나설 것”

양 전 비서관은 좀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놓지 않는 문 대통령이 ‘양비’(양 전 비서관의 줄임말)라고 부르며 편하게 대화하는 유일한 인사였다. 지난해 문 대통령의 히말라야 트레킹에도 동행했다. 양 전 비서관은 대선 전 사석에서 “집권하더라도 청와대에 가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고 한다.

양 전 비서관의 퇴장은 청와대는 물론이고 여당에도 적잖은 충격을 줬다. 여권 관계자는 “여론의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 정부에서 ‘친문 패권주의’라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걸 양 전 비서관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양 전 비서관조차 물러나는데 다른 친문 인사들이 선뜻 공직에 나설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날 다른 친문 인사들의 ‘2선 후퇴’ 선언도 이어졌다. 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사무총장을 맡았던 최재성 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권력을 만들 때 어울리는 사람”이라며 “(문 대통령 주변에) 인재가 넘치니 비켜 있어도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정청래 전 의원도 트위터를 통해 “임명직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양정철#문재인#공직#패권#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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