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은행 정규직 전환, 은행도 정부에 화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8일 03시 00분


“무기계약직 300여명 일괄 전환”… 민간기업 첫 움직임에 금융권 촉각
박진회 행장 “핀테크시대 필요 조치”… 노조측 “점포통폐합 쟁의 무마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직원끼리의 처우 간격을 좁히고, 비정규직에 대한 업무 제약을 풀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다.”

박진회 씨티은행장은 17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전날인 16일 무기계약직 직원 300여 명의 정규직 전환 카드를 꺼내든 이유에 대해 “대승적 차원에서 일괄 전환을 결정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씨티은행의 정규직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주요 정책으로 내놓은 뒤 민간기업에서 나온 첫 움직임이다. 국내 기업도 아닌 외국계인 씨티은행이 정규직 전환에 먼저 나서면서 금융 공기업은 물론이고 시중은행과 증권 등 금융권, 일반 제조업들도 ‘씨티은행의 실험’을 주시하고 있다.

박 행장은 정규직 전환 결정과 새 정부 정책을 직접적으로 연관짓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는 “‘오비이락(烏飛梨落)’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핀테크(기술 금융) 등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작업”이라며 정규직 전환이 경영상의 의사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씨티은행은 현재 영업점의 80%를 정리하고 일부 점포를 대형화하는 점포 통폐합을 진행하고 있다. 고객의 90% 이상이 영업점에 나오지 않고 인터넷 모바일을 통해 비대면 거래를 하고 있는 만큼 ‘점포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씨티은행은 문을 닫는 영업점에서 일하는 행원의 대부분은 고객가치센터와 고객집중센터로 자리를 옮겨 비대면 금융컨설팅 업무를 맡기기로 했다. 박 행장은 “이런 변화에 맞춰 창구에서 고객을 상대하던 비정규직 직원들도 종합적으로 업무를 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비정규직은 대출 상품을 취급하지 못한다. 마치 현대자동차에서 제네시스 작업 라인이 바빠도 쏘나타 라인에서 일하는 직원을 투입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나 임금 차이도 상당해 이를 줄이기 위한 취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규직 전환이 ‘노조 설득용’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씨티은행 노사는 점포 통폐합을 두고 이달 15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마지막 교섭을 벌였지만 결렬됐다. 노조는 이날부터 태업 등 단체행동에 돌입했다. “고객가치센터는 전화 상담을, 고객집중센터는 텔레마케팅 영업을 하는 사실상의 콜센터”라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은 교섭 내용 중 핵심 쟁점 사안이었고 노사가 이미 합의한 상태였다. 다른 안건에서 합의가 안 되니까 사측이 여론 무마용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행장은 이에 대해 “노조와 대립관계로 풀면 아무것도 안 된다.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려면 직원들의 지지도 필요하다. 새 업무를 해야 하고 이동으로 인한 불편함은 있을 수 있지만 인력 구조조정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씨티은행이 먼저 대대적인 정규직 전환 발표를 내놓으면서 금융권도 술렁이고 있다. 민간 기업에서 이 같은 계획을 밝히면서 ‘눈치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NH농협은행은 비정규직 2979명의 정규직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본격적인 검토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 이야기가 나온 정도”라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외국계 시중은행이 대대적인 정규직 전환 발표를 하니까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 은행은 오래전부터 정규직 전환 작업을 해 와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씨티은행#정규직#무기계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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