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박근혜 이명박 이상득… 내곡동에 몰려가는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0일 03시 00분


朴 전대통령 새 사저로 주목받는 내곡동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은 차분한 모습이었다. 평소 분위기 그대로였다. 차량이 다니는 큰 길에서 언덕을 따라 100m가량 올라갔다. 구룡산을 등진 고급 주택 한 채가 유독 시야에 들어왔다. 이 주택이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이 최근 구입한 집이다.

박 전 대통령은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을 떠나 이곳으로 이사했다.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은 출소 후 삼성동이 아니라 ‘내곡동 사저’로 오게 된다. 3월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할 때 박 전 대통령 측은 새 거처로 경기 파주시 등 3곳을 검토하다 내곡동으로 낙점했다.

‘주인 맞이’ 한창인 내곡동 신(新)사저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등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3월 13일 28억 원에 내곡동 집을 매입했다. 박 전 대통령은 비록 영어(囹圄)의 몸이지만 내곡동 사저는 이날도 주인 맞이 준비가 한창이었다. 인테리어 업체 직원들은 집 입구를 오가며 1t 트럭에 각종 기자재를 싣고 있었다. 주방 인덕션을 설치하러 온 직원들도 눈에 띄었다. 정리 작업은 거의 마무리돼 가고 있었다.

창문 안으로 보이는 주방에는 여러 주방도구와 그릇들이 깔끔하게 놓여 있었다. 처음 너저분한 짐과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던 주차장도 깔끔하게 비어 있었다. 이날 작업 중이던 한 인테리어 업체 직원은 “이영선 전 경호관(38)과 윤전추 전 행정관(39)이 주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해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집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주택 내부의 모습은 어떨까. 지난해 이 집을 구입하려고 방문했다는 A 씨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유럽형 호화 저택’이었다”고 기억했다. 일단 규모는 지상 2층, 지하 1층이다. 대지 면적 406m², 건물 면적 570.66m²다. 단독주택이지만 지하 주차장은 10대가 넘는 차량이 들어올 정도로 넓다. A 씨는 “방이 5개이고 욕실은 4곳이었다”며 “화장실 세면대 등은 모두 고급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었다”고 전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30명이 넘는 손님을 초대할 수 있는 널찍한 정원이 주로 야외 바비큐장으로 활용된다고 소개했다. A 씨는 “마지막에 아내가 반대해 결국 매입하진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호화로운 내부보다 더 눈에 띄는 건 외부 환경이다. 박 전 대통령 자택이 있는 ‘안골마을’은 전체 33가구로 이뤄진 작은 마을이다. 마을 근처엔 작은 슈퍼마켓 하나 없을 정도로 한적하다.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도 드문 편이다. 근처 초등학교와 일반 주택, 아파트, 사무실 등이 밀집한 삼성동 사저와는 정반대 분위기다. 내곡동이 이른바 ‘서울 속 시골’로 불리는 이유다.

내곡동은 ‘보수 인사’ 아지트?

내곡동은 박 전 대통령 이사 전에도 여러 차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이곳은 과거부터 주요 구여권 인사들이 소유한 부동산이 오밀조밀 모여 있던 곳이다. 박 전 대통령 자택에서 직선거리로 390m 떨어진 곳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집을 지어 살려고 했던 땅이 있다.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의원이 운영하는 농장 역시 바로 근처에 있다. 현재는 ‘보금자리지구’에 수용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부인의 땅도 박 전 대통령 자택에서 불과 200m 거리에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아들 시형 씨의 명의로 청와대 대통령경호처와 함께 2011년 5월 내곡동 땅을 사들였다. 매입한 서초구 능안말길21 일대는 고급 단독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능안마을’에 위치해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사저로 쓰려던 자리의 건물은 한때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자주 찾던 고급 한정식집이었다. 하지만 편법 증여 등 논란이 계속되자 이 전 대통령은 내곡동 사저 추진을 포기했다. 2012년 9월에는 시형 씨 명의로 된 땅도 기획재정부로 귀속시켰다.

이후 5년 넘게 방치되면서 현재 이 땅의 건물은 ‘폐가’를 방불케 했다. 건물 앞까지 풀들로 무성해 건물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2m 이상 자란 풀들과 버려진 각종 기자재들이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근처에서 텃밭 농사를 짓는 최모 씨(68)는 “결국 이 전 대통령이 매입했던 집과 박 전 대통령 자택 모두 ‘(주인이) 살지 않는 집’이다”라며 “10년 보수정권이 끝나고 교체된 현 상황을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도 1979년 내곡동 62-36 일대에 토지를 매입했다. 이 전 대통령이 매입한 부지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500m가량 떨어진 곳이다. 산 아래에 있어 현재는 주말농장으로 빌려준 상태다. 오 전 시장 부인의 토지(내곡동 106)는 1970년대 상속받은 땅인데 2011년 ‘공공주택 개발지구’로 포함되며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수용됐다. 2014년 완공돼 현재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오 전 시장 부인은 토지보상금으로 상당액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 선모 씨(57)는 “전 대통령과 전전 대통령이 선택한 땅인 만큼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이곳은 보수의 텃밭이다”라고 말했다.

강남의 마지막 금싸라기

내곡동 일대에는 최근 보금자리주택이 들어서는 등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강남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으로 평가받는다. 2009년 12월 선정된 내곡보금자리주택지구는 이듬해 사전 청약 때부터 관심이 쏟아졌다. 서울 외곽과의 접근성도 좋다. 경부고속도로와 맞닿아 있고 분당∼내곡 도시고속화도로 내곡 나들목(IC)과도 가깝다. 지하철 양재역까지 차를 타고 20분이면 도착한다. 지난해 말 고속철도(KTX) 수서역도 인근에 들어섰다. 내곡동 맞은편인 서초구 원지동에는 국립중앙의료원도 옮겨올 것으로 보인다.

강남에 비해 땅값이 저렴하다는 건 가장 큰 장점이다. 3.3m² 시세는 1500만∼2000만 원 정도로 강남에 비해 절반 이상 저렴하다.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 가격도 내곡동 사저의 두 배가 넘었다. 그 덕분에 매각대금으로 변호사 선임 비용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보다 훨씬 쾌적하고 공기도 좋으면서 강남과의 접근성도 뛰어나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서울이면서도 시골 같은 한적한 느낌을 주는 환경도 전직 대통령들이 내곡동을 선호하는 이유다. 심 교수는 “내곡동은 뒤편에 숲이 있고 업무용 건물 없이 주택들만 모여 있다”며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와 비교하면 환경의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이런 내곡동 환경 덕분에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 사저의 취약한 경호 문제를 해결했다. 내곡동 사저는 바로 뒤편의 건물이 경호동이 됐지만 삼성동 사저는 주변 건물의 시세가 높아 경호동을 마련하기 어려웠다. 근처에 고층 건물도 많아 사생활이 쉽게 노출됐고 그 때문에 경호 자체에 애를 먹었다. 당시 청와대 경호실은 4월 초 삼성동 사저에서 도보로 10분 이상 떨어진 곳에 임시방편으로 경호사무실을 마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통령이 내곡동을 사저로 추진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근처에 고층 건물이 없고 매입한 건물 뒤편이 예비군 훈련장이라 보안에 유리한 점이 한몫했다.

내곡동은 여전히 개발 가능성이 남아 있는 땅이기 때문에 ‘땅값이 오를 일밖에 없는 곳’으로도 손꼽힌다. 내곡동의 한 부동산 중개소 직원은 “투자 가치가 높기 때문에 강남의 중심가에 살던 사람들이 한적한 내곡동으로 이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전직 대통령들이 내곡동을 택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특교 kootg@donga.com·최지연 기자
#박근혜#이명박#이상득#내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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