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부터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성과연봉제 도입 기관에 가점을 부여하려던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법원도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지 않고 도입한 성과연봉제에 제동을 걸어 2010년부터 추진된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도입이 사실상 추진 동력을 잃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기관들도 궤도 수정에 나설 가능성이 커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7년 만에 브레이크 걸린 성과연봉제
1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 하반기(7∼12월) 중 공공기관 운영위원회를 통해 2017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편람에서 성과연봉제 관련 가점을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성과연봉제는 전체 배점의 3%를 차지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존에 도입된 성과연봉제를 연착륙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평가 항목을 두기로 했는데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 공무원노조총연맹 출범식에서 “공공부문 성과연봉제와 성과평가제를 즉각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경영평가 등급은 공공기관 임직원의 성과급 규모와 최고경영자 등의 해임 건의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 잣대다. 따라서 가점이 없어지거나 축소되면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도입을 유인할 장치가 사실상 사라진다. 또 기재부는 성과연봉제 미이행 기관에 대한 불이익 등을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성과연봉제와 관련한 정부의 ‘당근’과 ‘채찍’이 모두 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법원도 노사 합의 없이 추진한 성과연봉제 도입에 제동을 걸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전날 한국노총 금융노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지부가 회사를 상대로 낸 성과연봉제 무효 소송에서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적법한 절차(노조 동의)를 거치지 않은 성과연봉제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HUG 관계자는 “새 정부의 바뀐 노동정책에 따라 기재부가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에 맞춰 성과연봉제 도입 추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 혼란에 빠진 공공기관들
불과 몇 달 새 성과연봉제에 대한 기류가 180도 바뀌면서 공공기관들은 혼란에 빠졌다. 지난해 1∼6월 국내 공공기관 120곳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는데, 한국석유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서부발전 KDB산업은행 등 48곳은 노조 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을 거쳤다. 이 중 약 30곳의 노조가 HUG의 사례처럼 무효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노사 합의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공공기관도 노조의 반대에 부닥쳤다. 예금보험공사 노조는 “지난해 4월 조합원 총회에서 성과연봉제가 부결됐는데도 직전 노조위원장이 독단적으로 합의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성과연봉제 도입에 합의한 주택금융공사 노조도 “금융위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성과연봉제에 찬성했다”며 반대 방침을 밝혔다.
시중은행들의 성과연봉제 시행 준비는 사실상 중단됐다. 신한 KB국민 KEB하나 우리 NH농협 SC제일 씨티 등 시중은행 7곳은 지난해 12월 이사회 의결을 통해 2018년부터 성과연봉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한 시중은행 인사담당 임원은 “탄핵 국면에 접어들면서 성과연봉제 도입이 사실상 ‘올 스톱’됐다”고 말했다.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성과연봉제 시행은) 위에서부터 강제로 지시하는 ‘톱다운’ 방식은 맞지 않다. 회사별로 조직 문화에 맞는 성과주의를 노동조합과 협의해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새 정부가 공공기관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방침을 세운 상황에서 성과주의가 후퇴되면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견제할 수단이 없어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 대통령도 대선에서 “연공서열대로 급여가 올라가는 구조는 맞지 않다. 앞으로 새로운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호봉제 폐지, 성과 문화 정착’이라는 기존의 틀 내에서 새로운 대안이 모색될 가능성도 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노사가 성과연봉제에 이미 합의했다면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는 일에 주력해야 하며, 합의를 하지 못한 기관은 대안으로 직무급 제도를 상위 직급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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