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이 25일 뉴질랜드로 출국했다. 그는 지인들에게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의 시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문자메시지로 보내며 출국의 소회를 대신했다.
모두 깜짝 놀랐다. 15일 밤 양 전 비서관이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글을 보냈을 때다. 그의 청와대 입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을 때 기자는 칼럼을 통해 그의 ‘백의종군’을 에둘러 지지했다. 그래도 ‘설마’ 했다. 그의 의사와 관계없이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 양 전 비서관 등과 함께 11박 12일 일정의 히말라야 산맥 트레킹을 다녀왔다.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일종의 의식이었다. 트레킹 일정 마지막 날인 7월 4일은 양 전 비서관의 생일이었다. 중간에 합류한 김정숙 여사가 현지에서 장을 봐서 요리를 했다. 양 전 비서관을 위한 깜짝 생일파티가 열렸다.
덕담이 오가던 중 문 대통령은 “편하게 양비라고 했는데 요즘은 양 교수라고 부른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 “이제는 동지라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상황의 엄중함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을 너무나 미안하게 생각했다. 다시는 그런 일로 내 동지들을 빼앗기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친노(친노무현) 패권’의 오명(汚名)을 극복하고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었을 것이다. 양 전 비서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귀국 후 양 전 비서관은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의 첫 단추인 사전캠프 광흥창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탁현민 성공회대 교수를 비롯해 임종석 비서실장 등 순차적으로 합류한 광흥창팀 13명은 문 대통령의 고난을 나눈 ‘동지적 관계’라는 평가 속에 12명이 그대로 청와대로 입성했다. 양 전 비서관 1명만 빠졌다.
양 전 비서관은 대선 전부터 가까운 지인에게 “형이 뉴질랜드 교민회장인데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나는 뉴질랜드 가서 살 거다”라고 했다. 그의 결심을 아는 문 대통령은 15일 양 전 비서관을 청와대 관저로 불러 만찬을 했다.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양 전 비서관은 청와대 인근에서 늦은 시간까지 통음을 했다. 함께 있었던 청와대 관계자는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었겠나. 둘이서 1시간 만에 폭탄주로 25도짜리 소주 2병을 비웠다. 연거푸 술잔만 들이켰다”고 말했다.
‘다시는 동지들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문 대통령이 그의 출국을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일까. 청와대 관계자들은 ‘절박감’을 많이 거론한다. 성공한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절박감과 대통령에게 한 치의 걸림돌도 되지 않겠다는 양 전 비서관의 간절함이 이심전심으로 통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런 절박감 때문일까. 문재인 정부는 출범 20일 만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4대강 사업 감사, 최순실 국정 농단 추가 수사, 검찰·국정원·대기업 개혁 등 연일 파격적인 계획들을 선전포고하듯이 발표하고 있다. 80%를 넘어서는 국정운영 지지율 등 여론의 지지가 압도적일 때 적폐청산과 개혁을 밀어붙이겠다는 청와대의 의지일 것이다. 숨 가쁜 행보로 새 정부가 들어선 지 20일밖에 안 됐지만 두 달은 더 지난 것 같다는 얘기도 많이 들린다.
문 대통령은 대선 연설에서 “견줄 수 없는 커다란 절박감이 저의 도전을 지탱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며 “그것은 바꿔야 한다는 절박감,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감”이라고 했다. 하지만 누구도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적폐의 사슬을 단숨에 끊어낼 순 없다. 절박할수록 치밀한 계획과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몇 년 후를 내다보는 인내도 필요하다. 힘은 절제할 때 가장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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