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와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각각 지명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김영춘 의원은 모두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민주당의 볼모지인 영남에서 몇 차례의 도전 끝에 결국 지역 민심을 얻은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2003년 한나라당에서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한 5명의 의원을 일컫는 ‘독수리 5형제’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김부겸 후보자는 TK(대구경북)에서 당선된 첫 민주당 국회의원이다. 영남과 호남, 중앙과 지방, 보수와 진보의 대치 속에서 김 후보자는 늘 ‘중재자’를 자임해 왔다. 1976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김 후보자는 1977년 유신반대 시위로 처음 구속됐고,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다시 구속됐다. 졸업 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등 재야 단체에서 활동하며 1987년 6월 항쟁에 참여했다.
199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도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에 합류한 김 후보자는 1997년 통추 해체와 함께 한나라당에 합류했다. 2000년 경기 군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 후보자는 2003년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바꿔 2004, 2008년 군포에서 내리 3선을 했다. 김 후보자는 19대 총선을 앞두고 “내가 군포에서 4선을 하면 그건 월급쟁이”라며 고향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재도전 끝에 20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김영춘 후보자 역시 지역주의 타파에 앞장서 왔다. 이날 해수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일각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걸었던 길을 가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1984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그는 86그룹의 맏형으로 불린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는 김덕룡 전 의원과의 인연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YS 정부에서 대통령정무비서관을 지냈다.
김 후보자는 서울 광진갑에서 재선(16, 17대) 경력을 쌓은 뒤 고향인 부산으로 정치 무대를 옮겼다. 18, 19대 총선에 이어 부산시장 선거에도 도전했지만 번번이 지역주의의 벽에 부닥쳐 낙선했다. 김 후보자는 “선수를 쌓는 게 정치의 목표가 아니다”라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20대 총선에서 마침내 3선 고지에 올라섰다. 김 후보자는 이날 “위기에 처한 해운, 항만, 수산업을 재건하고 해양강국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부겸 △경북 상주(59) △서울대 정치학과 △16·17·18·20대 국회의원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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