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앉은 정부-재계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왼쪽)이 8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김연명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회분과위원장(오른쪽)과 티타임을 갖고 있다. 이날 박 회장은 “시간을 두고 실현 가능한 방안을 찾아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고, 김 위원장은 “노사 한쪽의 일방통행이 아닌 활발한 소통을 통해 정책을 가다듬을 것”이라고 밝혔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중소기업계가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 원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의 공약 이행을 놓고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했다가 국정기획위원회의 질책을 받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빗댄 ‘경고’까지 나오면서 새 정부의 ‘군기 잡기’가 지나치다는 재계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문 정부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위는 8일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해 간담회를 했다. 서울 영등포구 중기중앙회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사회분과)와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중소기업단체 대표들은 기다렸다는 듯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은 너무 급격하다” “근로시간 단축 시행 시기를 세부적으로 나눠서 연장해야 한다”며 정책의 ‘속도 조절’을 건의했다.
간담회 내내 정부의 일자리와 노동 정책에 대한 불만이 이어지자 급기야 오태규 국정기획위 자문위원은 “이렇게 강력한 중기육성책을 내세운 정부가 없었는데, 중소기업계가 ‘이 정도는 갈 수 있다’는 말은 없고 일방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만 하니 실망스럽다”며 “경총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총은 지난달 25일 김영배 상임부회장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요구가 봇물 터지듯 나와 기업들이 매우 힘든 지경”이라고 발언한 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으로부터 ‘반성부터 하라’는 공개 비판을 받았다.
당초 이날 만남은 문 정부가 출범 한 달 만에 재계와 공식적인 만남을 가지면서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경총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니냐’는 질책이 나오면서 만남의 취지가 빛이 바랬다.
이에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김연명 국정기획위 사회분과위원장이 마무리 발언으로 대화를 강조하고 전향적인 협조를 중소기업계에 당부하면서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하게 잘 마무리됐다”며 갈등 양상 진화에 나섰다. 국정기획위 대변인실도 “오태규 자문위원은 ‘노동시간 단축 문제 등 노동 현안만을 제기하는 것을 보니 당황스럽다. 마치 경총에 온 느낌이다’라고 발언했다”고 해명에 나섰다.
국정기획위가 방문한 대한상의에서는 정부와의 ‘협업’을 통한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간담회에 앞서 국정기획위 자문위원들과의 티타임에서 “(정부 정책에 대해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면서도 “서로 이야기하면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안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공개 간담회에서 대한상의는 중기중앙회와 마찬가지로 정책 추진 속도에 대한 완급 조절을 주문했다. 대한상의는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에 공감하지만 급격하게 추진하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에게 부담이 가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단계적으로 추진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에 대해서도 업무 숙련도 차이와 비정규직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개별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간담회에서 “가급적이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통해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고 아울러 차별적인 비정규직 문제도 해법을 같이 고민하며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기업 입장을 대변했다.
국정기획위는 ‘노동계를 먼저 만나고 우선적으로 챙긴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한 해명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김연명 국정기획위 사회분과위원장은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당연히 경제단체 방문도 스케줄이 미리 짜여 있었다. 노동계 편향적이란 건 오해”라고 항변했다. 국정기획위는 이날 회동에 앞서 이달 1일 한국노총, 2일 민노총과 만나 정책협의회를 먼저 가졌다.
이날 오전 일자리위원회도 소상공인연합회에 이어 중기중앙회와 연이어 간담회를 가졌다. 중소기업인들은 일자리를 늘리고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일자리 질을 높여야 한다는 정부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비용 상승과 인력 확보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호소했다.
이용섭 일자리위 부위원장은 “안 그래도 힘든 소상공인에게 더 많은 어려움을 줄 수 없고, 중소기업이 힘들어지는 정책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안다”고 답했다.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는 속이 좁지 않다. 소통 원하면 다 만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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