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8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한 달의 소회를 이렇게 압축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취임사에서 ‘광화문 대통령 시대’와 함께 ‘잘못된 관행과의 결별’을 강조했다. 새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민심의 기대를 담아 탈(脫)권위와 적폐 청산 의지를 밝힌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취임 한 달간 파격적인 소통 행보를 통해 다진 높은 국정 지지율을 바탕으로 강도 높은 ‘개혁 속도전’을 펼쳤다. 하지만 첫 내각의 윤곽이 절반도 그려지지 않은 ‘시스템 부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청와대 주도로 쏟아낸 개혁 과제들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계급장 뗐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첫 출근길부터 차에서 내려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등 과감한 소통 행보에 주력했다. 특히 신임 수석비서관들과 커피를 들고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며 담소하는 모습은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과 참모들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위민(爲民·국민을 위한다)관에서 여민(與民·국민과 함께한다)관으로 이름을 바꾼 비서동에 집무실을 마련한 문 대통령은 첫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계급장, 받아쓰기, 사전 결론’이 없는 ‘3무(無)회의’를 지시하기도 했다.
인사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등 호남 출신을 중용하면서도 지역 안배를 통해 대선 과정에서 내놓은 ‘탕평’ 약속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남성 중심의 관료 문화가 강한 외교부 장관과 국토교통부 장관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인 강경화 전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별보좌관과 더불어민주당 김현미 의원을 각각 발탁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세 차례에 걸쳐 직접 브리핑을 진행하고, 소방관 국가유공자 등을 대상으로 5차례 현장 방문에 나서는 등 대국민 소통 창구를 넓히려는 행보도 호평을 받았다. 윤 수석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예정에 없이 유족을 안고 위로하는 등 권위주의를 타파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18개 부처 가운데 6곳의 장관 후보자만 지명했을 뿐 9일째 장관 인사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인사 난맥’이 문 대통령 임기 초반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위장전입과 논문 표절이 가장 어려운 점”이라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던 유력했던 후보자들마저 두 원칙 때문에 대거 검증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검찰-국방부엔 외과수술식 타격
탈권위 행보 속에서 문 대통령이 꺼내 든 ‘사정의 칼’은 매서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취임 후 ‘적폐 청산’이라는 말은 공식적으로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선거 과정에서 약속한 개혁 과제에는 속도를 올리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계획인 만큼 개헌 이슈가 본격화되기 전에 개혁 작업을 상당 부분 진척시켜야 할 필요도 있다.
개혁의 양대 타깃으로는 검찰과 국방부가 떠올랐다. 취임 둘째 날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임명으로 검찰 개혁을 예고한 데 이어 ‘돈 봉투 만찬’ 파문에 대한 감찰을 지시하고, 곧바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임명 카드로 압박 강도를 높였다. 또 ‘정윤회 문건 파동’ 등 전임 정부에서 정치적 쟁점이 된 수사와 관련된 검찰 고위직 인사들을 대거 교체했다.
국방부에 대해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반입 보고 누락 사건을 개혁의 계기로 삼았다. 문 대통령이 보고 누락을 “충격적”이라고 표현한 데 이어 청와대는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불러 조사하기도 했다.
검찰과 국방은 노무현 정부가 개혁에 나섰다가 실패했던 분야라는 공통점이 있다. ‘검사와의 대화’ 등을 통해 검찰의 자체적인 개혁을 주문했던 노 전 대통령과 달리 문재인 정부는 ‘인사권’을 활용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형성된 검찰과 국방부 주류 세력을 ‘외과수술식’으로 과감히 도려내는 전략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 “개혁 성과 낼 그랜드 디자인 필요”
취임 한 달간 문 대통령은 직접 챙겨야 할 국정 현안을 업무지시 형태로 처리하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 방향이 담긴 9건의 업무지시에 따라 정부 부처 간 권력지도가 요동을 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내린 첫 업무지시로 구성된 일자리위원회는 경제 분야 최고 실세기구로 떠올랐다. 규제개혁과 4차 산업혁명, 노동구조개혁 등 굵직한 현안들을 조율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지시로 주목받은 국가보훈처 역시 장관급 부처로 격상을 추진하며, ‘4대강 일부 보 상시 개방’ 지시의 주무부처인 환경부도 실세 부처로 떠올랐다. 반면 4대강 사업 감사의 대상으로 지목된 국토교통부와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주무 부처인 외교부는 검찰, 국방부와 함께 개혁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업무지시 형태로 개혁 조치를 계속 쏟아낸다면 오히려 국정운영에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청와대가 빠르게 국정 주도권을 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개혁은 과정이 아닌 결과다. 개혁의 전체 그림을 그리고 우선과제를 추려내 신속하게 성과를 내는 ‘그랜드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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