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태훈]대통령의 인사수첩을 버려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9일 03시 00분


이태훈 정치부 차장
이태훈 정치부 차장
대통령제는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책임지고 국정을 펴나가는 정치제도다. 따라서 대통령이 함께 일할 핵심 참모를 마음껏 고를 수 있어야 한다. 감독이 선수를 선발하는 데 외부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해선 안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대통령의 내각 인사권을 규정한 헌법 94조에는 “행정각부의 장은 국무위원 중에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헌법 어디에도 탕평인사를 해야 한다거나, 여론의 지지를 따라야 한다는 의무 조항은 없다.

그렇지만 세계 어느 나라나 대통령이 내각을 구성할 때는 국민의 뜻을 면밀하게 살핀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건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는 내각 인사권을 독단적으로 행사하느냐, 인재등용을 잘 하느냐에 따라 국론통합과 국가발전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구성한 내각을 정적(政敵)이나 반대파들로 모두 채웠다. 초대 내각의 장관 7명 중 4명은 공화당 내 경쟁자들이었고, 3명은 민주당 출신이었다. 특히 국무부 장관에 임명된 윌리엄 슈어드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링컨과 3차 결선투표까지 맞붙은 숙적이었지만 링컨의 삼고초려로 내각에 중용된 인물이다.

링컨 대통령은 “왜 그렇게 불편한 내각을 구성하느냐”는 질문에 “조국이 매우 위험한 상태로 접어들고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지금 당장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당시 미국은 노예제에 대한 각 주의 입장 차가 커서 연방이 붕괴할 수도 있는 국가적 위기상황이었다. 이때 링컨 대통령은 당시 최고의 인재였던 자신의 라이벌들을 초대 내각에 임명해 정치 안정을 이루고 강대국의 기초를 닦았다.

역사적 배경이 다른 미국의 정치 사례를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지만 한 달 전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배울 점이 많은 것 같다. 흔히 링컨 대통령의 초대 내각을 ‘탕평’에 초점을 맞춰 평가하는 시각이 많지만 엄밀하게 보면 시대가 필요로 한 ‘능력’을 갖춘 인재가 등용된 드림팀 내각이었다.

대통령 취임 직후 순항하는 듯 보였던 문재인 정부가 내각 인선 문턱에 걸려 국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현상적으로는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천명한 ‘5대 비리 관련자 인사 배제’ 원칙을 파기했다는 논란 때문에 여야가 대치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본질은 결격 사유가 있는데도 대통령이나 정권에서 자리를 주고 싶은 사람을 무리하게 임명하려다 검증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장관 후보자들이 국회 인사 청문 과정에서 위장전입이나 탈세,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제기돼 논란을 벌이고, 경우에 따라 낙마하는 것은 과거 정부에서부터 되풀이돼온 익숙한 장면이다.

대통령이 ‘인사수첩’을 토대로 측근이나 평소 안면이 있는 전문가를 참모로 쓰면 이심전심 효과로 국정 효율이 올라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러면 내각이 대선 캠프와 별 차이가 없게 되고, 대통령의 국정수행 능력을 극대화하기가 어렵다.

문 대통령은 지금 하루라도 빨리 내각 구성을 마무리 짓고 개혁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때일수록 여유를 갖고 ‘적재적소(適材適所)’ 인사 원칙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당면한 북한 핵문제와 사드 배치를 둘러싼 안보 불안을 시급히 해소하고 경제 살리기와 청년일자리 창출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면 천하의 인재들이 문재인 정부로 모이도록 인사의 문을 더 활짝 열어야 한다. 능력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은 링컨의 인사 철학을 참고해 문 대통령도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최고의 인재’를 널리 구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태훈 정치부 차장 dong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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