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국회 첫 시정연설에서 “일자리를 늘려 성장을 이루는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며 11조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요청했다. 추경과 관련해 대통령이 국회에서 연설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새 정부 출범 34일 만에 ‘일자리 대통령’ 의지를 강조하며 추경에 반대하는 야권과 소통하려는 시도는 평가할 만하다.
추경 자금은 소방관 경찰관 집배원 등 공무원 1만2000명과 사회서비스 분야 인력 2만4000명 채용, 중소기업 고용지원 등 직접적 일자리사업에 가장 많은 4조2000억 원이 배정됐다. 지방자치단체가 여건에 따라 일자리를 자체적으로 늘리도록 한 지역사업에 배정된 돈도 3조5000억 원이다. 소방, 복지인력이 부족한 현실에 공무원을 늘리면 민생서비스가 개선된다는 대통령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공공 일자리를 늘린다고 해서 민간 일자리가 저절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에 성과주의가 도입되지 않고 철밥통만 튼튼해진다면 민간과 공공 부문 사이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공공 일자리로 상품과 서비스 공급이 증가하면 관련 소비가 늘면서 민간 일자리도 창출될 것이라지만 청년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인지는 불분명하다. 청년들이 하고 싶어 하는 분야에서 일자리가 나오도록 문 대통령이 왜 획기적인 서비스산업 규제 개혁을 하지 않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고용정책이 현장의 실태와 담 쌓은 채 책상머리에서 만들어져 추경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도 걱정스럽다. 중소기업이 청년 3명을 채용할 때 정부가 1명의 임금을 3년간 연 2000만 원 한도로 지원해주는 ‘2+1 채용지원책’에서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인다. 정부가 지원금을 준다고 해서 한 번 채용하면 정년까지 해고하기 어려운 정규직을 추가 채용할 중소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부 출범 후 돈을 풀겠다는 대전제를 먼저 세워 놓고 뒤늦게 숫자를 맞추다가는 혈세만 낭비될 우려가 있다.
특히 야권이 공무원을 늘리는 추경안에 반대하는 데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올해 중앙공무원 7500명과 지방공무원 4500명 등 총 1만2000명 채용에 들어가는 비용은 80억 원 정도지만 내년부터는 중앙공무원 인건비만 1200억 원으로 급증한다. 한 번 뽑으면 공무원연금까지 국민 혈세로 충당해야 하는 공무원의 속성상 내년 이후 증세가 불가피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그렇다고 야권이 끝까지 반대하며 추경의 발목을 잡는 것도 청년실업이 극심한 상황에서 협치하는 자세가 아니다. 국회에서 단 1원도 허투루 혈세가 쓰이지 않도록 추경 세부 항목을 꼼꼼히 검토하되 중장기 재정 건전성까지 고려한 보완책을 서둘러 마련하기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