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15일(현지 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6·15남북공동선언 17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추가 도발을 중단하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힌 것을 공개적으로 반박하자 워싱턴 외교가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지연 결정 이후 꾹꾹 눌러왔던 불편했던 심기를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계기로 터뜨렸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선제 타격 등 군사적 조치가 아닌 외교 수단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혀왔지만 동시에 대화를 위해서는 ‘적절한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적절한 환경이 되어야 김정은을 영광스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 대화 재개 조건을 비핵화가 아니라 핵 동결로 낮출 수도 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발신하기도 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지난달 1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공개 긴급회의를 앞두고 “우리는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북한이 모든 핵 프로세스와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때까지는 아니다”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내 트럼프 행정부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을 통해 “비핵화가 대화 재개 조건”이라고 못을 박았다. 지난달 방미한 문 대통령의 대미특사단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 대화 의지는 있지만 이를 위한 기준을 (비핵화에서 핵 동결로) 낮춰 잡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대화 재개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고 느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문 대통령의 대북 대화 재개 조건을 공개적으로 반박하면서 사드 논란 이후 복잡해진 양국 간 기류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더욱 꼬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사드 논란과 관련해선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워싱턴 정가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이를 부채질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외교적 수단을 통한 북핵 해결을 주장하면서도 중국의 대북 제재 이행을 거듭 촉구하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더욱 요구하는 만큼, 북한의 가시적인 태도 변화가 없다면 문 대통령의 이번 제안을 트럼프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와 관련해 미 정부는 북한 은행의 돈세탁을 대신해준 중국 기업을 기소하고 법원에 관련 자금 190만 달러(약 21억 원)에 대한 압류를 요청했다고 AP통신 등이 15일 보도했다.
미 국무부의 반응에 대해 우리 외교부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태도가 무엇인지 긴밀히 협의하면서 대화 조건을 구체화해 나갈 것”이라며 “한미 간 갈등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미국도 한국이 내건 대화 조건보다 남북회담 테이블에서 비핵화를 위한 보상으로 어떤 목표를 달성해낼 수 있을까 하는 전략을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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