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아닌 사람 수사” 직권남용 부인… “잘못된 보도로 국민의 지탄 받게돼”
발언 길어지자 재판장이 자제 요청
직업 질문에 “현재 무직입니다”
재판 20분전 도착… 미소 보이기도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이 16일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한 첫 재판에서 자신이 법정에 서게 된 게 언론 탓이라고 주장했다. 특정 언론사의 보도를 거론하면서 “일만 하며 살아온 제 인생은 지난해 7월 18일 처가 땅 관련 기사 이후 모든 게 변했다”며 “잘못된 언론보도로 한순간 온 국민의 지탄을 받아 마땅한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또 직권남용 등 검찰이 기소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다만 우 전 수석은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이 탄핵을 당하게 된 데 대한 참모로서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의 뜻을 밝혔다.
○ 우병우 “청와대 나온 뒤 8개월 가까이 고통”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우 전 수석은 발언 기회가 주어지자 A4용지에 미리 써 온 내용을 22분 동안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그는 “일만 알고 산 제 인생은 잘못된 언론보도 하나로 한순간 지탄받는 존재로 전락했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공직자의 숙명으로 감내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에서 나온 뒤 8개월 가까이 잠을 이룰 수 없는 고통의 나날 속에서 공직생활을 돌아보며 오늘 이 자리에 왜 피고인으로 서게 됐는지 반추한다”고 밝혔다.
우 전 수석은 처가의 서울 강남 땅 매각 등 자신과 얽힌 각종 의혹 보도를 길게 나열하며 “기사 수가 많아 해명할 엄두도 못 냈다”, “재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유죄임을 전제로 보도하기도 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제가 청와대에서 공직자로 근무했지만 그 이전에 저도 국민의 한 사람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무죄 추정 원칙하에 공정한 재판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우 전 수석은 검찰 수사에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예컨대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을 보고 사람을 찾는 방식으로 수사가 진행된다. 그런데 저에 대해서는 강남역 땅 사건으로 의혹이 제기된 뒤 결국 민정수석과 비서관 업무에 관해 직권남용으로 기소했다. 사건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 수사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우 전 수석은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에 대한 좌천성 인사 조치 강요 등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민정수석으로서 정당한 업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 전 수석의 발언이 길어지자 이 부장판사는 “준비하신 내용을 다 읽을 필요는 없고 마무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은 “나머지는 다 줄이겠다”면서도 5분가량 더 발언을 이어갔다.
우 전 수석은 법정에서 구치소에 수감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축복 속에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탄핵되도록 제대로 모시지 못한 정치적 책임을 청와대 비서진의 한 사람으로 준엄하게 느낀다”며 “오늘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께 사죄 말씀 올린다”고 말했다. 또 “대단히 불행하게도 박 전 대통령이 현재 영어(囹圄)의 몸이 됐지만 재판 과정에서 대통령님의 뜻도 밝혀질 거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 증인 신문 도중 검찰 지적에 언성 높여
이날 우 전 수석은 재판 시작을 약 20분 앞두고 법원에 도착했다. 앞서 검찰 조사나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전과는 달리 취재진의 질문에 차근차근 답변하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도 국정 농단 사태를 몰랐다는 입장이냐”는 취재인의 질문에 우 전 수석은 “법정에서 충분히 제 입장을 밝히겠다”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이 재판을 받는 상황에 대해서는 “안타깝다”고 짧게 말했다. 이어 “재판을 받으러 왔기 때문에 성실히 재판받겠다는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한 뒤 법정으로 향했다.
법정에 들어온 우 전 수석은 피고인석에 앉은 뒤 법정 경위에게 물을 요청하고 변호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검사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직업을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현재 무직입니다”라고 답했다.
이날 재판에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60)이 증인으로 출석해 우 전 수석의 문체부 간부들 인사 조치 강요 혐의에 대해 증언했다. 우 전 수석은 김 전 장관에게 직접 질문했고, 일부 답변에 대해선 가끔 헛웃음을 지었다. 신문 도중 검찰 측에서 우 전 수석 측에 “증인한테 질문을 안 하고 자꾸 자기 얘기만 하면 어떡하느냐”고 지적하자 우 전 수석은 “내 기억이 이런데 증인 기억이 어떤 거냐고 물어보는 것이 왜 잘못된 겁니까”라며 언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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