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이 다음 주초 모습을 드러낸다.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핀셋형 규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집값 상승이 서울 강남, 부산 등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런 곳들을 집중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전방위적인 규제는 자칫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어렵게 하거나 경기 침체의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둔 조치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가 시장의 외면을 받은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규제 완급을 조절하면서 수요자들이 원하는 ‘좋은 집’을 늘려주는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LTV·DTI는 ‘선별적 환원’
정부 대책으로 가장 먼저 거론되는 카드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강화다. 대출을 까다롭게 만들어 투기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의미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경기 부양을 위해 LTV는 50∼70%(수도권, 은행 기준)에서 모든 지역 70%로, DTI는 50∼60%(수도권, 은행 기준)에서 60%(수도권, 모든 금융권)로 완화했다. 그동안 두 차례 연장됐고 7월 말 종료된다.
정부는 LTV·DTI의 선별적 환원도 고려하고 있다. 다주택자나 고가주택 소유자에게 적용하거나 투기 과열이 우려되는 지역만 지정할 수도 있다. 최근 아파트 값이 급등한 서울 강남 4구(강남 서초 송파 강동구)와 강북 일부(마포 성동구) 지역, 부산, 세종, 경기 과천시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나 1주택자는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다주택자에게 적용하는 것 역시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주택 소유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것은 옳지만 같은 다주택자라고 하더라도 등록된 임대사업자와 등록을 하지 않은 일반 임대인은 차이를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조기 도입에도 관심이 쏠린다. 주택담보대출 원리금만 따지는 현행 DTI와 달리 DSR는 모든 대출의 원리금을 따져 대출 한도와 금리를 정하기 때문에 규제 강도가 훨씬 세다. 문제는 서민들의 주택자금 대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려다 실수요자를 옥죄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 ‘청약조정대상 지역’ 확대 검토
청약조정대상 지역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지난해 11·3대책을 통해 시장 과열 우려가 있는 지역 37곳에서 1순위 청약 자격과 분양 재당첨 등을 제한했다.
정부는 수도권 일부와 부산, 세종 등으로 청약조정대상 지역을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입주할 때까지 분양권 전매를 제한하는 지역을 현행 강남 4구와 과천 등 5곳에서 강북 일부 지역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마포 성동 용산구 등이 후보지로 거론된다. 정부는 다만 청약조정대상 지역으로 지정되면 해당 지역은 안정화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규제에서 벗어난 지역에 수요가 몰리면서 집값이 급등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 대상 지역 설정을 놓고 고민 중이다. 채미옥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은 이와 관련해 “가수요 억제를 위해 전매 제한 기간을 늘려 시장 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이번 대책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그 안에 포함된 14개 규제 중 일부 카드를 꺼낼 수 있다. 국토교통부 고위 관계자는 “투기과열지구를 지정하면 시장이 한꺼번에 가라앉을 우려가 있다”며 “일반 청약 규제보다 조금 더 강한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재건축 단지의 ‘조합원 지위 양도’를 금지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건축 단지에서 단기 수익을 거두려는 투기 수요를 억제하려면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제도를 시행하려면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을 개정해야 하는 점이 걸림돌이다. 사실상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재건축 시장이 얼어붙을 수도 있다.
○ “규제 완급 조절이 중요”
정부가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규제를 내놓더라도 시장이 냉각되기 전에 제때 되돌리는 순발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이 일정 수준 안정되면 규제를 다시 풀어주는 게 중요한데 부처 간 협의 등으로 이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지역별, 시기별로 규제를 탄력 적용하는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의 시그널을 외면한 섣부른 규제가 ‘풍선 효과’ 등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노무현 정부도 임기 내내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를 쏟아냈지만 서울 아파트 값은 57% 뛰었다. 두 연구위원은 “부동산 대책 중 가장 좋은 것은 시장 자율화”라며 “규제는 효력이 즉시 있는 것 같지만 지속성을 갖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수요가 넘치는 지역의 공급 관리 대책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구는 정체됐지만 1인 가구 증가로 가구 수는 줄지 않고 있는 데다 서울 등 일부 지역은 여전히 수요가 공급보다 많기 때문이다. 권도엽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수요가 몰리는 지역의 주택 공급에 신경 써야 한다”며 “더 좋은 집을 원하는 중산층이 공급 불안을 우려하지 않도록 주거의 질과 양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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