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기자가 찾은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오토 웜비어 씨 자택. 큰 비극을 겪은 집 같지 않게 평온한 분위기였다.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 씨와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도 보였다. 왼쪽 아래는 아버지가 15일 기자회견에서 혼수상태인
아들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 신시내티=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어제 북한을 ‘잔인한 정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들이 순진하고 밝은 젊은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20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자택에서 만난 프레드 웜비어 씨는 대학생 아들 오토 웜비어(23)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책임을 묻겠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과 관련해 ‘어떤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시내에서 차로 30분가량 떨어진 그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프레드 웜비어 씨 부부는 마침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러 집을 나서던 참이었다. 사업으로 성공해서인지 비교적 큰 저택이었다. 열린 차고에는 이탈리아산 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눈에 들어왔다. 프레드 씨는 “몸과 마음이 지쳤다. 우리에겐 운동이 필요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기자가 “슬픔을 나누기 위해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많은 한국인이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그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조전을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직 받지 못했다”며 “한국 대통령까지 아들의 죽음을 애도해 주리라 생각지 못했다. 다시 한 번 한국인 모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했다.
기자가 장례식 이야기를 꺼내자 프레드 씨는 “여기서 차로 5분 거리에 아들이 졸업한 와이오밍고교가 있다. 거기서 22일 오전 9시에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필요하다면 그때 가족의 입장을 밝히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재촉했고 부부는 자전거를 몰고 도로로 나섰다. 차를 몰고 일행을 한참 따라갔다. 28도의 더운 날씨였지만 부부는 바람에서 아들의 향기를 맡는 듯 밝은 표정이었다. 그는 전날 낸 성명에서 “웜비어가 돌아왔을 때, 말을 할 수도, 볼 수도, 언어에 반응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얼굴 표정은 하루 만에 평화롭게 바뀌었다”고 적었다.
웜비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 하루가 지났지만 마을의 모든 가로수에는 파란색과 흰색의 리본이 매여 있었다. 명랑하고 사랑스럽던 친구의 귀환을 축하하며 주민들이 매어 놓았던 환영 인사였다. 이젠 작별 인사가 됐지만. 낯선 동양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60대 백인 남성 스탠리 길버트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오토는 운동을 좋아하는 밝은 아이였다”며 “오토가 북한에 억류된 뒤 부모가 마음고생이 너무 컸다. 백방으로 호소해도 정부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그 결과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장에서 만난 지역 뉴스 채널 WLWT5의 리처드 차일스 기자는 “프레드와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며 “나를 포함한 주민 대다수가 웜비어의 짧은 생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웜비어 가족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웜비어가 의식불명 상태로 7일 동안 치료를 받다 숨진 신시내티대학병원의 새나 록웰 매니저는 “웜비어와 관련한 어떤 정보도 제공할 수 없다”고 극도로 말을 아꼈다. 웜비어의 사인이 북한의 고문 탓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에서 가족들은 부검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