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친북 간첩? 외국서 더 알아주는 작곡가…끝내 귀국 못하고 獨서 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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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7월 6일 09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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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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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독일을 방문 중인 김정숙 여사가 5일(현지시각) ‘동백림(東伯林)’ 간첩단사건에 연루돼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한 고(故) 윤이상 선생의 묘소를 방문했다. 김 여사는 윤이상 선생 묘소에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영부인의 이같은 행보가 전해지면서 윤이상 선생에 대한 관심이 높다.

윤이상 선생은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은 음악가다. 1917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태어난 윤이상 선생은 3세에 경남 통영으로 옮겨 어린시절을 보냈다. 통영은 단순히 그가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 아니라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 된 장소다.

어린시절 오르간과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악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윤이상 선생은 부친의 반대에 부닥치자 한 때 가출을 감행하면서 서울과 동경에서 음악 공부를 했다. 그는 1956년 부인과 어린 남매를 고국에 두고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으나 곧 독일로 옮겨 1959년 베를린 음대를 졸업했다. 그는 다룸슈타이트음악제에서 쇤베르크의 12음기법으로 한국의 궁중음악 색채를 표현한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해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순탄한 길을 걸었던 윤이상 선생은 1967년 ‘동백림 사건(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2년간 고국에서 옥살이를 하면서 험한 길로 접어들었다. 독일에서 한인회를 조직해 박정희정권의 독재정치를 비판했던 윤이상 선생은 ‘친북활동’ 혐의로 베를린에서 강제송환 돼 무기형을 선고 받고 옥살이를 하다 세계 음악계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2년만에 석방돼 한국을 떠났다.

윤이상 선생은 석방 후 독일에 영주하면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갔다. 윤이상 선생의 신념은 ‘이념’보다는 ‘민족’을 중시해 지난 1990년 10월 평양에서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한 음악인이 함께한 ‘범민족통일음악회’의 산파 역할을 했으며, 통일을 위한 음악 등 예술분야의 교류를 강조했다.

문민정부 출범 후인 1994년 9월 서울에서 열리는 자신의 음악제에 참석할 예정이던 윤이상 선생은 조건 등이 맞지 않아 좌절되자 몸져누웠다. 윤 선생은 1995년 11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향을 그리워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김정숙 여사는 5일 오후 윤이상 선생의 묘소가 있는 독일 베를린 외각에 있는 가토우 공원묘지(Landschaftsfriedhof Gatow)를 참배했다. 올해는 윤이상 선생 탄생 100주년이다.

김정숙 여사는 방독 길에 오르면서 가져온 통영의 동백나무 한 그루를 윤이상 선생 묘소에 심었다. 윤이상 선생의 살아생전 향수를 늦게나마 달랜다는 의미를 담았다. 통영은 동백나무가 10만 그루 이상 우거진 동백 숲이 유명하다. 윤 선생이 연루된 동백림 사건에서의 동백림은 동베르린을 의미하면서도, 통영의 유명한 동백(冬柏)과 발음이 같기도 하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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