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정착-SOC지원 기본틀 유지
박근혜 2014년 ‘드레스덴 선언’은 北체제보장 문구 없어 반발 불러
문재인 대통령이 6일 밝힌 ‘베를린 구상’은 2000년 3월 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제시한 대북 구상, 일명 ‘베를린 선언’과 여러모로 닮았다. 일각에서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을 ‘베를린 선언 2.0’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다만 베를린 구상은 17년 전 베를린 선언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한반도 비핵화 같은 난제는 뒤로 미루고, 이산가족 상봉 같은 민간 교류에 집중하자는 ‘장·단기 해법’을 나눠 제시한 게 특징이다. 문 대통령은 직접 “쉬운 일부터 시작하자”고 북한에 제안했다.
또 문 대통령은 “통일보다는 평화 정착이 먼저” “대규모 사회간접투자 약속” 등 북한 체제 보장 및 경제 지원을 약속하며 “핵 도발 중단 및 한반도 비핵화”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이 “우리가 원하는 것은 통일보다는 냉전 종식 및 평화 정착”이라며 핵 포기를 요구하는 대신에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지원을 약속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우리 경제는 북한을 떠안을 능력이 없다”며 흡수통일을 염려하는 북한을 안심시켰고, 석 달 뒤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북한을 일단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야 하는, 한층 힘든 상황이다. 발표 하루 전 선언문을 북한에 보내줄 정도로 사전 교감을 한 김 전 대통령 때와는 차이가 큰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3월 28일 독일 드레스덴공대에서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했다. 이른바 ‘통일 대박론’을 구체화한 것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북한에 복합농촌단지 조성 등 경제적 지원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드레스덴 선언에는 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처럼 ‘흡수통일에 반대한다’는 북한 체제 보장 문구가 없었던 것도 특징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핵을 포기하고 진정 북한 주민들의 삶을 돌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틀 뒤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 가능성을 운운하며 거세게 반발했고, 남북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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