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 전후로 펼쳐진 외교전에서 ‘한미일(한국 미국 일본) 대 북-중-러(북한 중국 러시아)’의 전선(戰線)이 명확하게 그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주변국에 기대지 않고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 주도해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 간 갈등이 심화되면 우리 정부가 운전석을 지키는 데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이 우리 차에서 내려 다른 차로 옮겨 가거나 중국이 우리 차 앞을 가로막는 등의 돌발 변수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얘기다.
○ 뉴욕과 베를린에서 터져 나온 파열음
한미일과 북-중-러 사이의 대립 구도는 5일(현지 시간)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부터 표출됐다. 미국은 “북한의 ICBM 발사를 강력히 규탄하고 중대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의 안보리 성명 초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북한 미사일은 ICBM이 아니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라며 초안 수정을 요구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6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노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결과적으로 북핵 문제는 한국과 북한 문제가 아니라 북한과 미국 문제”라며 미국에 책임을 떠넘겼다. 한국이 아닌 미국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북한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 진영 간 결속 강화하며 압박 시작
양 진영은 결속을 강화하는 동시에 상대 진영을 압박하고 있다. 4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만난 중국과 러시아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쌍(雙)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시험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동시 중단)→북핵 협상 개시→무력 사용과 침략 배제 및 평화 공존을 위한 원칙 확정→핵 폐기와 북-미 관계 정상화, 동북아 안전보장체제 일괄 타결’이라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한국과 미국이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북한 도발 중단의 대가로 군사훈련 축소나 중단을 검토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음에도 ‘쌍중단’ 카드를 꺼내 한미를 압박한 것이다.
이에 맞서 한미일 정상은 6일 만찬회담에서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가능성을 내비쳤다. 제재 국가인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관도 제재하는 이 카드는 북한의 최대 무역국인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또 3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북한과 국경을 접한 국가들이 북한에 위협적이고 도발적인 길을 포기하고, 즉각 비핵화 조치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중단을 설득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는 ‘러시아 게이트’로 불편한 상황이고, 미국과 중국은 미국의 단둥은행 제재로 얼굴을 붉히고 있다. 한미일과 북-중-러 간의 전선이 더 뚜렷해지냐는 미-러, 미중 정상회담에 달린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났고, 8일 시 주석과 회동한다.
○ 한국의 선택은?
문 대통령은 지난달 방미 기간에 “사드 번복의 의구심은 버려도 좋다”며 미국을 안심시켰다. 북한의 ICBM급 미사일 발사 뒤에는 미국에 먼저 무력시위를 제안하기도 했다. 반면 6일 ‘베를린 구상’에서는 북한 중국 러시아가 주장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다. 이렇다 보니 “정부의 스탠스가 애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일-중-러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공통의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라며 “각국이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전쟁 위협 제거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가 그 접점을 찾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 구도에서 미국 일본의 손을 놓지 않으면서도 중국 러시아를 북핵 문제 해결의 지렛대로 이용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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