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를 두고 국회는 몸살을 앓았다. 일주일 전 여야는 추경안 처리에 합의했지만 심사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문제는 ‘최·종·택 트리오’(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 안종범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였다. 야당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서별관 청문회)’에 이들의 출석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청와대는 강경했다. 야당과 청와대 사이에 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국정 운영에 흠집을 내려는 정치적 의도”라며 결국 청와대 편에 섰다.
여야는 2주일여간 지루한 기 싸움을 벌이다가 정기국회 때 추경안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한 지 38일 만이었다.
그 후 1년. 한국 정치는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란 ‘헌정 파고’를 넘어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여권에선 ‘헌정사가 탄핵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는 자화자찬이 쏟아졌지만 정치만 놓고 보면 아무런 차이가 없다.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추경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대립 구도는 공수만 바뀌었을 뿐 1년 전과 똑같다. 문재인 정부 출범 두 달 만에 정치 시계는 다시 탄핵 이전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 ‘마이웨이’ 여권, ‘볼모 정치’ 야권
10일 추경안 심사를 위해 소집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또다시 파행했다. 인사 밀어붙이기에 나선 ‘마이웨이’ 청와대와 무기력한 여당, 여러 사안을 연계하는 ‘볼모 정치’ 야당의 속성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탓이다. 지난달 7일 국회에 제출된 추경안은 당초 예정된 11일은 물론이고 7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18일 본회의에서도 처리가 불투명하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날도 독설을 퍼부었다. 추 대표는 “현재의 교착은 전적으로 야당의 발목잡기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국민의당의 문준용 씨 의혹 제보 조작 사건과 관련해 “이유미 단독 범행이 아니라는 것은 박지원 전 대표의 발언으로 증명할 수 있다”며 강성 발언을 이어갔다.
야당은 추 대표의 ‘독설’에 오히려 안도하는 모양새다. ‘국회 올스톱’의 책임을 떠넘길 수 있어서다. 이른바 ‘적대적 공존’이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무조건 딴죽을 걸 생각은 없지만 여당이 야당을 깡그리 무시하면서 협치를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가 (여당에) 뺨 맞고 발길로 차이면서 협치하자며 민주당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사정해야 하느냐”고 했다.
이날 국회의장과 여야 4당 원내대표 정례 회동과 여야 예결위 간사단 회동은 ‘예상대로’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 그칠 줄 모르는 ‘정치 요요현상’
청와대는 현재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임명 강행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국방부 수장 자리를 더 이상 비울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노동부 장관도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인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대타협의 주무 장관인 만큼 시급히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도덕 검증의 기준이 높아지면서 많은 인물들이 입각 자체를 고사하고 있다. 이만한 인물을 찾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청와대 내부에선 “설령 대통령이 지명 철회를 선택한다 해도 정국 경색이 풀린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두 후보자를 낙마시킨다고 해서 야당이 추경안이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순순히 통과시켜 주겠느냐는 얘기다. “자칫 야당의 기만 살려주고 실익이 전혀 없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도 야당과 대립할 때마다 제기된 논리다.
여야는 지난해 촛불 정국과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이라는 유례없는 정치 파동을 겪으며 대선 과정에서 모두 ‘협치’와 ‘대탕평’을 공언했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만에 각 진영이 생존을 위한 무한 정쟁에 나서며 과거를 답습하는 ‘정치 요요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송, 조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할 경우 국회 상황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어 청와대의 고심도 깊다. 여권 관계자도 “초기 국정 운영에서 추경안과 정부조직법 처리가 중요한 만큼 대통령도 고민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정국 정상화를 위해 두 후보자 중 ‘한 명 낙마’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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