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한국의 전력 수요가 2년 전에 세웠던 전망치보다 10% 줄어들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이번에 크게 줄어든 장기 전력 수요 예측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탈(脫)원전 정책을 뒷받침할 주요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요 예측이 불과 2년 만에 크게 바뀌면서 일각에서는 정부 입맛에 맞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 전력 수요 전망 이례적으로 큰 폭 감소
민간 전문가 그룹으로 구성된 ‘(전력)수요전망 워킹그룹’은 1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회의를 열고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2031년)에 담길 전력 수요 전망의 초안을 내놨다. 전망 초안에 따르면 2030년의 예상 국내 전력 수요는 101.9GW(기가와트)로 7차 계획(113.2GW) 때보다 10%(11.3GW) 줄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이란 정부가 전력 수급 안정을 위해 2년마다 세우는 15년 단위의 중장기 계획이다. 수요전망 워킹그룹 회의는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첫 단계다. 이후 전력설비 워킹그룹 회의→세미나→공청회 등을 거쳐 올해 말 최종안이 확정된다. 이 안에 따라 정부는 시기를 조절해 발전소를 짓는다. 특히 예상 전력수요량은 발전소 증설 계획의 기본자료가 된다.
수요전망 워킹그룹은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어 전력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7차 계획에선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3.4%로 봤지만 이번에는 성장률 전망치를 2.5%로 낮춰 잡았다. 수요전망 워킹그룹은 “성장률 전망을 2.7%까지 올리더라도 2030년 최대 전력 수요는 7차 때의 2030년 전망보다 8.7GW 적은 104.5GW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수요전망 워킹그룹 위원인 김창식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도성장기 때와 성장률 2.5% 시대의 전력 수요 패턴은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오히려 전력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정부 탈원전 정책 반영 vs 과학적인 수요 예측 결과
이처럼 장기 전력 수요 전망이 2년 만에 크게 바뀐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번에 줄어든 수요량(11.3GW)은 원전 및 화력발전소 11기의 생산량에 해당하는 전력량이다.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가 되어야 할 예측이 들쑥날쑥 바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담당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해 이번 계획을 공개하기에 앞서 민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8차 계획 공개 여부를 자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2015년 발표되었던 7차 계획 수요 전망은 2013년에 세운 6차 계획과 큰 차이가 없다. 6차 계획의 2026년 최대 전력 수요(108GW)는 7차 계획과 똑같다. 하지만 8차 계획에서는 99.1GW로 수요 전망치가 8.2%나 감소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수요 계획에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의지가 반영됐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실제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달 2일 “올해 말까지 8차 전력수급계획이 만들어지면 (탈원전 공약) 철학이 반영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수요 전망에 맞춰 발전소 증설계획을 다시 짠다면 신고리 원전 5, 6호기를 포함한 신규 원전과 화력발전소 건설 계획의 축소나 취소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연구 참여자들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수요를 산정했다고 주장한다. 김창식 성균관대 교수는 “학자적 양심을 걸고 이번 발표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산업구조 변화 반영은 미흡
일각에서는 이번 수요 전망이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최근 성장하는 산업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반도체, 철강, 중화학공업의 전기 수요가 수년 내에 크게 줄어들 가능성도 거의 없다. 경제성장이 둔화되더라도 전력 사용량이 예상보다 크게 줄어들지 않을 수 있어서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이번 전력수요 계획에 대해 “충격적인 결과”라고 평했다. 그는 “(8차 계획은) 지금까지 전력 수요계획 가운데 가장 크게 수요가 급감한 것”이라며 “과거 계획과 이번 계획 중 하나는 틀렸다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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