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회담 제의 이후]‘對北대화 올바른 조건’ 한미 온도차
美, 제안 하루도 안돼 “시기상조” 일각 “북핵 논의서 한국 배제 우려”
당국 “한미간 인식 큰 차이 없어… 본격회담 아닌 접촉수준” 진화나서
“관계 부처간 조율 안돼” 지적도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군사당국·적십자 회담을 동시에 제안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18일 미국이 “지금은 대화의 조건이 멀리 떨어져 있다”(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며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등 또다시 엇박자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는 “우리 정부가 한반도 평화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 나간다는 것에 대해선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국제사회와 의견을 같이한 부분”이라며 미국 등과 사전 조율도 있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한미 정상이 합의한 대화 재개의 ‘올바른 조건’을 놓고 공조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이번 회담 제안 카드는 ‘베를린 구상’ 이행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13일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관가에선 저녁에 실무부처 긴급 브리핑이 열린다는 말이 돌기도 했지만 회의 내용은 보안에 부쳐졌다. 이후 사흘 뒤 대화 카드가 공개된 건 미국에 이해와 동조를 구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일 거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실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NSC 하루 뒤인 14일 청사에서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를 만나 베를린 구상과 관련해 일관된 기조로 후속조치를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당시 “내퍼 대사 대리가 조 장관의 설명에 이해와 지지를 표시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파이서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의 회담 제의에 대한 질문에 “한국에 물어봐 달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정부 당국은 진화에 나섰다. 통일부 당국자는 18일 브리핑을 통해 “한미 간 (인식에) 큰 차이는 없다”며 “우리 정부가 제안한 건 본격적 대화 조건이 마련됐다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은 초기 단계 ‘접촉’ 수준의 성격으로 봐야 하고, 미국 일본 등이 언급하는 ‘본격적 대화’와는 거리가 있다는 의미다. 외교부 역시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 등 주요 국가와) 사전에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최근 국제사회가 북한을 상대로 초강경 대응 기조를 이어가는 상황인 만큼 회담 제의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또 미국 측과의 정교한 사전 조율이 미흡했다는 관측도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전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회담 내용 등 구체적인 부분까진 미국 등과 교감이 없었던 걸로 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우리만 치고 나가는 상황이 반복되면 앞으로 국제사회가 북한 문제를 논의할 때 우리만 배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내에서 충분한 사전 의견 조율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한 정부 당국자는 “대북 경제 제재 방식 등을 두고 고민하던 중 회담 제안 사실을 들었다. 당혹스러웠다”고 토로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 미국과 공조해온 일본에서도 우리 정부의 회담 제의에 일부 냉담한 반응이 나왔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은 “지금은 압력을 가할 때”라고 했고, 마루야마 노리오(丸山則夫) 일본 외무성 대변인은 “우선순위는 제재를 통해 평양에 압박을 가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반도 핵 문제 진전에서 얻어왔던 긍정적인 성과는 하나같이 대화를 통해 얻은 것”이라며 “(대화에) 힘을 줘야지 훼방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미국을 비판한 것이다. 북한 문제 해결의 ‘운전대’를 잡기 위해 던진 문재인 정부의 대화 제의 카드가 초장부터 힘을 받지 못하자 북한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 등 문재인 정부의 ‘쌍끌이’ 대화 제의에 북한은 이틀째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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