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모두 달성하기 위해 5년 동안 178조 원이 필요하다고 19일 밝혔다. 이는 전임 박근혜 정부가 집권 초 공약 이행을 위해 만든 ‘공약가계부’ 재원 소요 추정치인 135조 원보다 43조 원 늘어난 수치다.
씀씀이는 커졌지만 이번 국정기획위의 재원 마련 계획에 대해선 “허술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연적인 세수(稅收) 증가분이 5년에 60조 5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등 낙관적이거나 비현실적인 방안이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 복지와 일자리에만 96조 원 들어
정부가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분야는 복지다. 복지에 투입하는 재원만 5년간 77조40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전체 공약 이행 재원의 43.5%를 차지한다. 기초연금 및 장애인 연금 10만 원 인상에만 23조1000억 원을 투입하며 100개 과제 중 가장 많은 재원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5년 동안 10조3000억 원을 사용해 5세 이하 아이들에게 매달 10만 원씩 지급한다는 아동수당 공약도 유지했다.
이 밖에 △공공임대주택 17만 채 공급(15조 원) △누리과정 어린이집 전액 국고 지원(5조5000억 원) 등도 5조 원 이상 대규모 국고가 드는 사업이다.
일자리 창출 사업도 많은 재원이 들어가는 분야다. 문 대통령이 직접 일자리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일자리 정책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소방·경찰관, 복지 공무원 등 17만4000명의 공무원을 새로 뽑는 데 8조2000억 원이 든다. 청년 임금 지원과 구직수당 지급 등 청년 일자리 지원(7조8000억 원) 역시 많은 예산이 든다. 이를 포함해 일자리 분야 전체에 5년간 19조2000억 원이 필요하다.
○ 재원 마련 방안은 구멍 숭숭
문제는 재원 마련이다. 국정기획위는 돈을 쓸 곳에 대해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지만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어떻게 추가로 걷을지에 대해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정부는 5년 동안 세수를 늘려 82조 원을 마련하고 이 중 70%가 넘는 60조 원은 자연적인 세수 증가로 충당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5년간 돌발변수 없이 경기가 계속 좋아도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일단 올해는 나쁘지 않다. 5월까지 전년 대비 증가 세수가 11조200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3년 전인 2014년에는 세금이 예상했던 것보다 10조9000억 원이나 덜 걷혔다. 임기 중 1년이라도 세수 결손이 생기면 5년 계획이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세수 증대는 지난 정부가 사실상의 간접 증세를 해서 이룬 것”이라며 “불확실한 수입을 토대로 재원 마련 대책을 세운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재원 마련 대책의 구멍은 곳곳에 나타난다. 국정기획위는 불공정 거래에 매기는 과징금 상한액과 연체 세금을 걷어 5년 동안 5조 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과징금 상한액 상향과 관련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고, 연체 세금 징수 대책은 상시 추진되는 정책이라 ‘마른 수건 짜기’에 불과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만약 경제가 꾸준히 성장한다면 재원 마련에 큰 걱정이 없다. 하지만 올해만 해도 경제 성장률 3% 달성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새 정부는 양적 성장에 치우치지 않겠다며 성장률을 끌어올릴 뚜렷한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정부는 20, 21일 국정운영 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연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국정과제에서 구체화된 소득 주도 성장이 경제 성장의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지만 충분조건이 되기는 어렵다”며 “청년 일자리 문제만 해도 일자리 증가 정책 없이 소득 재분배를 통해서만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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