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0일 대기업 법인세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고 부유층 소득세율을 높이는 방안을 잇달아 거론하면서 세금 인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8월 초 발표되는 세법 개정안에 관련 내용을 포함시킬 가능성이 높다.
부실한 공약 이행 재원 마련 대책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면서 정부와 여당은 ‘세금 인상이 불가피해졌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다만 조세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상을 상위 0.02% 기업(126곳)과 상위 0.04% 고소득자(6680명)로 좁혔다. 전문가들은 지속 가능하게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넓혀 중산층 이하에서도 적은 액수라도 부담하게 하는 ‘넓고 얕은’ 증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증세 대상자 6680명, 기업 126곳
국세청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이 타깃으로 삼은 2015년 기준 과세표준 5억 원 이상 고소득근로자는 6680명이고, 이들이 내는 세금(근로소득세)은 1566억 원이다. 국내 전체 근로소득자 1700만 명 가운데 0.04%에 불과하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이런 조치는 소득 재분배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증세 대상 기업의 수는 더 적다. 민주당에 따르면 과표 2000억 원을 넘는 기업은 126곳이다. 민주당 측은 “5대 그룹 계열사 위주로 법인세가 인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과표 1000억 원 이상 기업이 내는 법인세는 23조 원으로 국내 법인세수의 절반가량에 달한다.
재계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세수가 부족할 경우에나 법인세 인상을 검토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현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 문 대통령 “강도 높은 재정개혁 함께 가야”
증세에 대한 공감대는 정부 여당에서 이미 형성됐다. 특히 이날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민주당 의원이기도 한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이 “표 때문에 증세 없이 복지만 확대하겠다는 식으로 언제까지고 갈 순 없다”고 말하고 추 대표가 이를 본격적인 논의 테이블에 올리면서 증세 작업은 탄력을 받게 됐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 참석한 장차관급 인사 17명 중 4명이 증세안에 동의했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도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국정과제 발표 이후 일부에서 소득세 법인세 중심의 인상 여론이 일고 있다”며 운을 띄웠다. 정부와 여당이 동시다발적으로 세금 인상 논의에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은 증세론의 민감성을 고려한 듯 이날 증세 언급은 피하고 대신 나랏돈을 아껴 쓰자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 발언만 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적극적인 재정정책은 반드시 강도 높은 재정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며 “재원 조달을 위해서도,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예산사업들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철저히 점검해 현재 예산을 절감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증세론 촉발시킨 국정과제
증세 논의는 19일 국정기획위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로 본격화됐다는 게 정부 안팎의 분석이다. 국정기획위는 100대 과제를 실행하기 위해 세금 자연증가분 60조 원과 지출 구조조정만으로 178조 원 공약 이행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 정부 내부에서조차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근혜 정부 당시 ‘증세 없는 복지’ 주장처럼 논란이 정부의 발목을 잡기 전에 정부 대신 집권 여당이 대신 십자가를 메고 ‘부자 증세’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한편 문 대통령은 “저성장·양극화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경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경제정책의 중심을 국민과 가계에 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핵심은 역시 일자리”라며 “좋은 일자리를 통해 가계소득을 높이고 내수 활성화가 경제성장을 이끌어내서 다시 일자리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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