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는 강도 높은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 국영 석유회사인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이 연료 판매를 중단한 지 약 2개월이 지난 현재 북한의 석유가격이 50%가량 폭등했다고 로이터통신은 17일 보도했다. 지난달 1.46달러(약 1640원)였던 것이 한 달 만에 2.18달러(약 2449원)까지 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자동차들이 멈춰 섰을까.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최근 함경북도 소식통을 인용해 “‘써비차’(트럭을 여객·운송용으로 개조한 차량)의 운행이 (운행횟수와 가격에 있어)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고 전했다.
운수업자들은 달라진 상황에 발 빠르게 ‘적응’을 했다. 승객뿐만 아니라 짐에도 요금을 받아왔는데, 상대적으로 사람보다 짐 값이 쌌다. 그래서 업자들은 이제 짐을 덜 싣고, 사람을 더 태우는 방식으로 수지타산을 맞춘다는 것이다. 그러자 승객인 장사꾼들은 꾀를 냈다. 큰 배낭에 짐 두 개를 넣어 짐 한 개분 값만 내려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 주민들의 장삿속은 이제 남한을 뺨칠 정도가 됐다.
북한은 최근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2011∼2014년 1% 내외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국가 배급 시스템이 붕괴된 이후 주민들이 돈벌이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북한 경제를 이끌고 있다. 특히 ‘고난의 행군’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북한의 30대들, 이른바 ‘장마당 세대’가 북한판 자본주의의 주역들이다.
북한의 시장(市場)인 ‘장마당’은 현재 최소 387개가 있으며, 60만 명 이상이 상인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마당이 북한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할 정도”라고 중국 주간지 ‘라이프 위클리’가 5월에서 전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북한 당국이 멍석을 깔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당국이 주민들의 사적 소유와 재화 거래를 눈감아 주면서 자산이 많은 부자를 뜻하는 ‘돈주’(돈의 주인)가 되는 것이 주민들의 꿈이자 목표가 됐다. 보통 1만 달러(약 1122만 원) 이상 자산가가 돈주로 불리는데, 북한엔 20만 명가량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장마당에서 ‘푼돈’을 버는 장사치와는 달리 돈주들은 북한의 변화를 이끌며 큰돈을 벌고 있다. 이들은 부동산, 운송업, 광산업, 서비스업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며, 고리대금이나 밀매도 가리지 않는다. 특히 북한은 2014년 11월부터 개인의 기업 투자를 합법화하면서 돈주들의 활동에 날개를 달아 줬다. 북한이 경제난 속에서도 50층 이상 아파트들이 즐비한 여명거리를 4월 완공해 공개할 수 있었던 배경엔 돈주들의 대규모 투자가 있었다.
문영순 북한개발연구소 연구원은 4월 열린 ‘북한 부동산 공시제도와 통일 후 전망’이란 세미나에서 “북한에서는 비록 사용권에 대한 매매라도 불법에 해당되지만 당국이 민생 안정을 위해 사안에 따라 묵인하거나 수용해 건물, 토지 등의 매매 및 임대가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돈주들은 부동산 같은 전통적 투자처 외에도 돈이 되는 곳이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동강 모래를 채취해 평양의 건설현장에 내다 파는 ‘모래장사’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로 불리며 알짜 수익을 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리뷰 4월호에 따르면 택시 영업도 활발해지면서 평양에서만 1500대 이상이 운행되고 있다. 평양 택시는 대동강여객운수사업소가 엄격하게 관리하지만 지방 택시는 개인이 매달 일정 이윤을 국영기업에 납부하면 영업할 수 있을 정도로 운영이 자유롭다. 2012년부터는 공식 허용된 개인약국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개인이 자체적으로 구입한 국내외 약품을 당국에 검증만 받으면 팔 수 있다.
최근 북한 시장에 쇠고기가 등장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상이다. 북한에서 소는 생산수단으로 간주돼 공동 소유만 가능하고, 사적인 도살이 금지돼 왔다. 엄격한 관리 탓에 일반 주민들은 쇠고기 맛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비록 중국산이기는 하지만 시장에 쇠고기가 풀리면서 정육사업도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자본주의와 배금주의에 물들기 시작하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데일리NK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10대 청소년들마저 돈벌이나 장사에 몰두하며, 학교에서도 장사 경험이나 정보를 공유하거나 각자 가져온 물품을 흥정하며 거래하는 데 집중한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학교에서 이뤄지는 거래는 골목시장보다 흥정이 쉬워 부모들도 필요한 물건을 학교에서 구해 쓰라고 할 정도”라면서 “가방 안에는 책 대신 사탕, 수첩 등 동무에게 팔 물건이 가득하다”고 전했다. 이어 “교사들은 이를 말리기는커녕 학급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갹출해 오히려 장사를 부추기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른 소식통은 “돈벌이에 집착한 나머지 학생들 여럿이 조를 이뤄 밀수나 절도에 손을 대는 일도 있다”고 전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