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도발을 이어가면서 동북아 안보 정세에 격랑이 몰아치고 있다. 김정은의 ‘핵·미사일 폭주’가 ‘임계치’에 다가설수록 미국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미중(美中) 대결의 격화로 한국의 운신의 폭도 날로 좁아지고 있다. 군사력을 동원한 파국적 사태부터 극적인 외교적 해결 가능성까지 향후 전개될 시나리오를 예상해 보고 한국에 미칠 파장을 짚어 본다. 》
[1] 美, 北의 핵-미사일기지 선제타격
北 보복땐 대량피해… 한국정부 동의할 리 없어
북한이 핵 탑재 ICBM을 실전배치하면 미국은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었다고 보고, 대북 선제타격을 ‘실행 가능한 옵션’으로 검토할 수 있다. ICBM이 미국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만큼 ‘예방적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으로 북한 핵·미사일 능력의 제거 수순에 돌입하겠다는 것. 스텔스전폭기와 초정밀유도무기로 영변 핵시설 등 북한 전역의 핵·미사일 기지와 이동식발사차량(TEL), 지휘부를 파괴하는 내용이 거론된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더 많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가 동의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미국이 동맹 파기를 각오하지 않는 한 독자적 대북 선제타격 확률은 제로(0)”라고 말했다. 득보다 실이 크다는 우려도 많다. 지하에 건설된 다수의 북한 핵·미사일 기지를 모두 제거하기 힘들고 북한의 보복으로 대규모 국지전이나 전면전으로 비화돼 한국에 엄청난 인명·물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한국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2] 대북 원유공급 차단 등 국제사회 제재 강화
유엔의 현실적 액션플랜… 中-러 협조 미지수
대북 원유 공급 제한을 포함한 유엔 제재결의안은 국제사회가 현 상황에서 북한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ICBM급 1, 2차 도발로 중국,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초강경 제재 결의안 채택에 동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원유 공급 제한을 결의안에 포함시키려고 중국, 러시아에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도 “중국이 겉으론 심드렁해도 결의안 조건 등을 놓고 미국과 치열한 물밑협상을 진행 중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의 원유 공급원인 두 나라가 ‘인도적 지원’ 차원의 원유 차단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해야 일이 풀린다는 지적이 많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미국이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의 모든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한 제3국 기업과 개인 제재)’을 통한 독자 방식 등 지금보다 강력한 제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3]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 또는 한국 독자 핵개발
‘공포의 균형’으로 北에 맞불… 비핵화에 역행
북한이 핵미사일을 다량으로 전력화하면 남북 간 군사력 균형은 깨질 수밖에 없다. 한미연합군의 첨단 재래식 전력의 대북 우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한(對韓) 확장억제의 효용성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유사시 미국이 자국민에 대한 핵공격의 위협을 무릅쓰고, 한반도에 군사적 개입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다.
때문에 주한미군의 전술핵 재배치와 독자 핵개발 등 대북 핵옵션도 대안으로 다시 거론되고 있다. 이른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으로 북한 핵무기의 효용성을 반감시키는 시나리오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특정 시점까지 북핵 문제가 성과가 없으면 전술핵을 들여오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 한계가 많다.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비핵화 목표에도 상치돼 국제적 파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한국의 핵개발은 ‘역내 핵도미노’에 대한 우려로 미국 등 주변국이 동의할 리 만무하고, 국제사회 제재 등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4] 北-美 양자대화 통한 핵동결 합의 추진
‘北핵보유’ 인정하는 미봉책… 한국 방관자 전락
북-미 양자 대화는 외교적 해법으로는 한국에 최악이고, 북한에는 최선의 시나리오다. 김정은이 가장 바라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기조인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가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미국은 핵시설 동결 및 미사일 발사 유예 등의 조건을 걸고 북한과 양자 대화에 나설 개연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전략적 중요성보다 미국의 실리(북한 핵무기 확산 방지 등)를 앞세워 문제를 푸는 지름길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미 비확산 문제 연구기관 군축협회(ACA)의 켈시 대븐포트 비확산담당관은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백악관과 의회는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지원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대화 분위기가 조성돼도 양측 견해차가 커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북-미 양자대화가 성사되면 한국 정부는 대북문제의 ‘운전석’에서 밀려나 방관자로 전락할 것”이라며 “이런 기류가 감지되면 우리 정부가 그대로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코리아 패싱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5] 中-러 적극적 중재로 北 다자대화 복귀
中-러 ‘北의 전략적 가치’ 포기할 기색 안보여
북한의 ‘경제적 목줄’을 쥔 중국, 러시아가 북한을 회유해 핵·미사일을 포기토록 하거나 미국, 한국 등이 포함된 다자 대화로 복귀시키는 시나리오다. 한국으로선 최선의 방안이다. 국제사회의 대북공조를 유지하면서 대화 재개를 통한 현 정부 대북정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게 중론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전략적 자산’인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에 전혀 변화가 없어서다. 권영세 전 주중대사는 “북한의 잇단 ICBM급 도발 이후 두 나라의 태도를 보라. 달라진 게 있느냐”며 “김정은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인 국제사회의 분열을 보며 ‘비웃고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중국이 북한을 우습게 보고 있는데 오판”이라며 “무릎 위에 올려놓은 애완견(북한)은 관리가 가능하지만 미친개가 되면 언제 물지 모른다”고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저지에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이 중국에도 이득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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