核불가침 조약→한미훈련 중단→미군 철수… 北의 벼랑끝 베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5일 03시 00분


[토요판 커버스토리]北 ICBM 도발, 김정은의 속셈은

북한 김정은이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전 보유란 최종 목표를 향해 마지막 전력 질주를 하고 있다. 7월에만 두 차례나 ICBM을 시험 발사했다. 준비되는 족족 그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곧바로 발사하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발사된 화성 14형은 최대 고도 3724.9km를 찍었다. 이번 ICBM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는 데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탄두 대기권 재진입 기술까지 완성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개발 속도로 볼 때 이 관문도 곧 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 단계는 ICBM에 경량화된 핵탄두까지 장착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미국의 그 어떤 제재에도 핵탄두를 장착한 ICBM을 보유하겠다는 야심을 버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김정은이 핵탄두 장착 ICBM에 집착하는 속내는 무엇일까. 그의 속셈과 야심을 독백 형식으로 분석해 봤다.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데 핵탄두 ICBM을 포기하라고? 절대 못해. 무조건 고!’

이걸 위해 10년 넘게 제재 속에서 허리띠를 조이며 살았는데, 그동안 흘린 피땀이 아까워서라도 절대 못 버려. 온갖 제재 하려면 얼마든지 하라지. 어차피 제재해 봐야 실효성도 없고 우린 잘 단련돼 있다.

내게 제일 중요한 것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제재로 인민이 좀 죽어 나가도 체제 유지엔 큰 문제없다. 1990년대 중반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어도 권력을 끄떡없이 유지한 아버지의 노하우도 물려받았으니까 그건 자신이 있다. 설사 굶주린 인민이 폭동을 일으켜도 핵탄두 ICBM을 쥐고 있는 이상 미국이나 남조선이 절대 개입할 수 없으니 내부 진압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미국의 달콤한 약속에 넘어가 핵 개발을 포기한 리비아의 카다피나 핵이 없어 비참하게 죽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핵과 ICBM 개발을 통해 인민들에게 ‘미국과 맞서 싸우는 위대한 지도자’라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면 내 체면은 뭐가 돼? 이걸 개발하는 동안엔 내부도 강력히 통제할 수 있다. 지도자가 초강대국 미국과 정면으로 맞서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불평불만이나 하는 자들은 살려둘 필요조차 없지.

미국은 늘 우리를 무시하고 거지 취급해왔다. 사실 빈말이었지만 우리가 아무리 평화협정을 맺자고 요구해도,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라 해도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본토가 핵 공격 사정권에 든다면 얘기가 달라질걸? 이젠 체급이 달라졌으니 당당하게 핵 군축 협상장에 마주 앉을 수가 있다. 미국이 부르면 나가긴 하겠지만 핵무기는 포기할 수가 없어. 그 카드를 줘버리는 순간 나의 유일한 힘은 사라지는 것이니까.

난 ‘조미 핵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요구할 거야. 미국이 핵 가진 러시아나 중국과도 잘 지내는데 우리가 그들처럼 살자고 요구 못할 이유는 없어. 미국이 불가침을 약속하면 조미 간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며, 한미 군사훈련도 하지 말라고 요구할 생각이다. 그리고 미군을 철수시켜야지. 그럼 남조선은 내 수중에 들어온다.

남조선이 도중에 끼어들어 민간교류니, 공동 경제개발이니 미끼를 던지는 것은 자기 주제도 모르는 것이지. 돈으로 따져도 우리의 핵 ICBM이 얼마짜리인지 저들은 이해도 못 해.

2000년에 아버지가 미국과 미사일 협정을 맺었을 때 우리가 받기로 한 것을 상기해 줄까. 우리가 미사일을 폐기하는 조건으로 미국은 매년 10억 달러씩 3년간 30억 달러와 매년 인공위성 3개를 발사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우리가 가진 미사일은 고작 사거리가 1200km에 불과했다고.

이제는 사거리가 10배로 늘었고, 거기에 핵탄두까지 얹을 수 있으니 500억 달러쯤 불러도 우리가 손해야. 미국이나 남조선이 그런 돈 내놓을 수 있어? 절대 못 내놓을 거야.

미국이 우리의 핵과 ICBM 능력을 인정하면 그때부턴 나도 좀 고민이 된다. 그때 가선 핵실험과 ICBM 시험 발사는 더 이상 저들을 놀라게 할 수 없을 테니. 그렇다고 우리가 언제까지 실험만 하고 있을 순 없잖아.

그땐 좀 더 세게 나갈 수도 있다. 남조선이 괴로울 때까지 계속 시달리게 하는 거야. 그렇다고 저들이 나와 전쟁을 치를 리도 없잖아. 미국을 향해선 중동과 같은 외국에 핵 ICBM 기술을 판다고 해볼까. 이 세상엔 이 정도 기술을 사려고 적어도 수십억 달러를 지불할 나라는 얼마든지 있을 거야.

너무 나가다가 미국이 나를 제거할 수 있다는 건 좀 걱정이 돼. 그러나 나도 잘 따져봤다. 나를 대신해 조선을 확실하게 틀어쥐고 통치할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천만에. 장성택, 김정남처럼 조금이라도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다 죽였다. 나를 제거한 뒤 이 땅이 무정부 상황이 되고 동북아에 연쇄 혼란이 벌어질 상상을 하면 끔찍할 거야. 중국도 그런 상황은 절대 용납할 수가 없을 것이고. 저들도 계산할 줄 안다면 차라리 핵과 ICBM 값을 치러주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는 걸 어렵지 않게 판단할 거야.

아무튼 일단은 지금 나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돌아갈 퇴로가 없다고. 일단 핵 ICBM 완성해 놓고, 달라진 지위에서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지. 어차피 인정하든 않든 핵과 ICBM은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가 있다. 이건 나의 전 재산이기도 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북한#미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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