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王毅·사진) 중국 외교부장은 6일(현지 시간) 새벽 미국 뉴욕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 대북제재 결의가 통과된 직후 필리핀 마닐라에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열린 한중 북-중 미중 중-러 연쇄 회담에서 이슈성 발언을 쏟아냈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ARF 외교무대의 핫이슈로 떠올랐음에도 공격적 언사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계획을 문제 삼으며 한국을 압박했다. 북핵 해결 협력은 뒤로 밀렸다. 미국의 압박 끝에 대북제재에 동참한 중국마저 북핵 문제에서 ‘코리아 패싱’으로 가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중국 외교부가 6일 밤 공개한 한중 외교장관 회동 내용은 대부분이 사드에 할애됐다. 왕 부장은 회동 모두발언에서 “사드가 한중관계 개선에 찬물을 끼얹었다(潑冷水)”고 포문을 연 뒤 회동 내내 “한중관계 발전의 장애물((난,란)路虎)과 걸림돌(絆脚石)을 제거하라”고 압박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쐈는데 왜 사드를 배치하나? 사드가 ICBM을 막을 수 있나? 답은 매우 분명하다. 불가능하다”며 공격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회담 모두발언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회담 내용에도 북핵 문제는 마지막에 한 대목이 등장한다. “(미국과) 차례로 긴장 국면을 만드는 걸 자제해야 한다”는 훈계성 발언이었다.
미국의 ‘코리아 패싱’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중국마저 한국을 북핵 문제 해결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사설에서 “한국이 북핵 문제에서는 건설적인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사드를 들여오는, 경솔하고 어리석은 비건설적 행동의 축소판을 보여줬다”고 비난했다. 왕 부장이 “(대북)제재로 대가를 치르는 주체는 중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이 나온다.
반면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미중 외교장관 회담 내용에는 미군의 한국 사드 배치 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오히려 왕 부장은 미중관계가 최근 ‘적극적인 상호작용(良性互動)’을 보였다고 평가하며 “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내 방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이달 한중수교 25주년 즈음에 진행하려던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이 “사드 문제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중국 측의 입장으로 무기한 연기된 일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미국은 놔두고 한국에만 고압적 태도를 보이는 중국의 이율배반적 태도는 사드 배치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이며 중국의 안보 이익을 위협한다고 주장해온 그동안의 논리와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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