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같은 초(超)연결시대에 통신은 물과 공기 같다. 통신시장이 포화된 상태에서 통신사들이 통신비로 수익을 만드는 구조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통신비 인하를 둘러싸고 이동통신사들에 대한 압박이 전방위로 높아지는 가운데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8일 본보 기자와 만나 통신비 인하의 필요성을 작심하듯 쏟아냈다. 이달 11일 취임 한 달을 맞는 유 장관이 언론과 단독으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 장관은 9월부터 선택 약정 할인율 인상(20%→25%)을 예정대로 실시할 방침임을 재차 강조하면서 “선택 약정 할인은 신규 가입자뿐 아니라 기존 가입자도 함께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통신사들과의 갈등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9일 이동통신 3사는 선택 약정 할인율 인상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각각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정책의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협의 등의 절차가 잘 지켜지지 않은 점, 미래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 장관은 “통신비 인하로 이통사 수익이 당장은 줄더라도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각오로, 정부 정책에 협조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은 누가 주도권을 쥐는지가 중요한 싸움이다. 5세대(5G)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자율주행 드론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텐데, 기업과 정부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정부가 국가적인 인프라를 지원하는 대신 통신사는 미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이는 통신사가 전화요금이나 기존 망의 데이터 매출로 수익을 거두는 것보다 신규 서비스 개발에 역점을 둬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5G는 기존 4G보다 20배 빠른 속도 등이 특징인 차세대 통신 기술로, 한국은 내년 2월 평창겨울올림픽 때 시범 적용한다. 통신장비업체인 에릭슨엘지는 5G 도입으로 이동통신사들이 신규 서비스 등으로 2026년까지 1조2330억 달러(약 1400조 원)의 매출이 늘 것으로 봤다.
유 장관은 과기정통부를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로 만들고 4차 산업혁명을 이끌기 위한 구상도 함께 밝혔다. 우선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가능한 한 빨리 출범시킬 예정이다. 그는 “당초 민관학 각 10명씩 약 30명으로 꾸릴 예정이었지만 민간 비중을 높여 현장 의견을 많이 수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과기정통부가 연 20조 원에 육박하는 연구개발(R&D) 예산을 관할하는 것과 관련해 “기존에 관행적으로 해왔던 연구를 재검토해서 R&D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기존 연구를 △그간 해온 방식대로 계속할지 △수정해서 계속할지 △중단할지 등 어떻게 할지를 따지는, 가칭 ‘우짤래 프로젝트’를 해볼 계획이다. 9일 달탐사 프로젝트를 2018년에서 2020년으로 늦춘 것을 시작으로 현실적으로 수행이 힘든 과제 등을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과제 성공률이 97%, 98% 등 지나치게 높은 게 비현실적이다. 기초연구의 성공률은 통상 20% 정도지만, 일단 시작된 과제는 발의자가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그대로 끌고 가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중단 과제의 책임자는 면책해서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되 실패한 연구 산출물을 공유하는 등 세금을 잘 쓰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소프트웨어(SW) 강국’을 만들기 위해 공공 SW 시장 개선에도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필요하면 감사원이 개입할 수도 있다”고 밝혀 공공 SW 시장에 대한 감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10여 년 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2006∼2008년) 시절 SW 강국을 만든다 했는데, 바뀐 것이 없다. 개발자들은 강도 높게 일하고 저가 발주가 이어지고 있다.”
그는 “국내 SW 시장이 ‘아직도 왜’ 개선되지 않았는지 살펴본다는 뜻에서 ‘아직도 왜’라는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현황 분석을 한 뒤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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