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창전동에서 전세를 사는 맞벌이 직장인 이모 씨(36)는 최근 발표된 ‘8·2부동산대책’을 보고 내 집 마련의 꿈을 접었다. 서울 전체가 투기과열지구로 묶이면서 중소형 아파트(전용면적 85m² 이하)를 분양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9월부터 서울의 중소형 아파트는 모두 청약가점제로 분양된다. 무주택 기간, 부양 가족 수, 청약통장 가입 기간 등으로 계산한 그의 청약가점은 32점. 서울 당첨 기준(60∼70점)에 턱없이 모자란다. 기존 아파트를 사는 것도 동시에 어려워졌다. 이 씨는 “6억 원짜리 아파트를 사려면 절반 이상은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8·2대책으로 한도가 2억4000만 원으로 줄었다”면서 “가점이 낮고, 모아둔 돈도 적은 30대의 피해가 크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8·2대책이 시행 열흘째를 맞으면서 예상치 못한 제도의 허점이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각종 규제가 유예 기간 없이 곧바로 시행돼 투기 목적이 없는 실수요자도 애꿎은 피해를 본다는 불만이 높다. 이번 대책의 상당 부분이 특정 계층을 정밀하게 조준하기보다는 시장 전체에 전방위적 충격을 준 결과다.
중도금 대출 규제가 소급 적용된 분양 현장도 혼란에 빠졌다. 8·2대책에 따라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40%로 강화된다. 하지만 대책 발표 이전에 입주자 모집공고를 한 아파트의 당첨자나 계약자들까지도 중도금 대출에 대해 LTV 40% 규제를 곧바로 적용받게 됐다.
투기지역에서 7월 말 청약을 끝낸 ‘신길센트럴자이’ 등이 대표적이다. 이곳 분양 관계자는 “고객들에게 중도금 대출을 60%까지 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는데 규제를 소급 적용해 당황스럽다. 대출 안내를 다시 하고 계약을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6·19대책 때는 이번과 달리 6월 19일 이전에 입주자 모집공고를 한 아파트에는 대출 규제가 적용되지 않았고, 일반 주택에도 7월 3일까지 유예 기간을 뒀다.
실수요자들에게는 완화된 LTV, DTI 규제(50%)가 적용되지만 무주택 가구주이면서 부부 합산 연소득 6000만 원 이하, 집값 6억 원 이하 조건을 갖춰야 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 아파트 값은 평균 6억 원을 넘어섰고 1분기(1∼3월) 맞벌이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7145만 원이나 된다.
서울 등 ‘청약조정대상지역’에서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면제 요건에 ‘2년 거주’가 추가된 것도 불만 사항이다. 3일 이후 잔금을 치르거나 등기를 설정한 주택부터 바로 적용돼 대책 발표 전에 계약금과 중도금만 낸 사람들도 모두 규제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2년 전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를 앞둔 서모 씨(40)는 “잔금 치를 형편이 안 돼 일단 전세를 놨다가 팔려고 했는데 갑자기 거주 요건이 생겨 계획이 다 틀어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8·2대책으로 서울 전체가 투기과열지구로 묶여 일률적으로 강도 높은 규제를 적용받으면서 형평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올 들어 7월까지 서울에서 영등포(3.34%) 강동(3.19%) 관악구(3.12%) 등은 아파트 값이 3% 이상 급등한 반면에 성북(0.71%) 강북구(0.83%)는 1%도 채 오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집값 상승세가 더뎠던 서울 강북권 주민들 사이에서는 “강남 집값의 절반도 안 되는데 왜 우리가 똑같은 규제를 받느냐”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집값 과열이 지속된 부산이 규제 대상에서 빠진 것을 두고 “대통령 고향이어서 제외됐다”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과)는 “곳곳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나는 건 대책이 정교하지 못하다는 뜻”이라며 “시장이 새로운 규제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동시에 꼼꼼하게 대책을 검토해 실수요자에게 피해를 주는 부분은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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