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31년간 재판만 해온 사람… 어떤 수준인지 보여드릴것”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3일 03시 00분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
김명수 후보자 밝혀… 양승태 대법원장과 비공개 면담

“(저는) 31년 5개월 동안 법정에서, 그것도 사실심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호흡하면서 재판만 해온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어떤 모습인지 이번에 보여드리겠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58·사법연수원 15기)는 22일 오후 양승태 대법원장(69·2기)과의 면담을 위해 대법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법원장직 수행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김 후보자는 시종 미소 띤 얼굴로 “대법원에서 3년간(1999∼2002년) 재판연구원으로 밤낮 일을 했는데 오늘은 오는 기분이 좀 다르다”며 “(양승태) 대법원장님을 뵙고 앞으로 청문회나 이후 절차에 관해 가르침을 받으려 한다”고 말했다.

○ “청문회 통해 우려 불식할 것”

이날 김 후보자는 “어제 발표 이후 저에 대해 분에 넘치는 기대 그리고 또 상당한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충분히 이해가 될 만한 그런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전임 대법원장에 비해 사법연수원 기수가 13기나 낮고, 전·현직 대법관도 아닌 자신이 대법원장으로 전격 지명된 데 대한 법원 안팎의 심리적 충격을 이해한다는 뜻이었다.

김 후보자는 “이번 청문 절차 준비를 통해 그런 기대에는 더욱 부응하고 우려는 불식시킬 것”이라며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특정 판사의 동향을 사찰했다는 일명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 구체적 현안에 대해서는 “청문회에서 말씀드리겠다”며 입을 다물었다.

양 대법원장을 만나러 근무지인 강원 춘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김 후보자는 수행원을 대동하지 않고 관용차 대신 시외버스를 탔다. 서울 광진구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한 뒤에도 지하철로 대법원이 있는 서초역으로 이동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 후보자 자격으로 양 대법원장을 면담하러 상경하는 일이 춘천지법의 공무가 아니라고 판단해 춘천지법 관용차를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양 대법원장과 오후 3시 반부터 면담을 한 뒤 오후 5시경 일정을 마치고 대법원을 떠났다. 양 대법원장은 김 후보자에게 축하인사를 건네고 청문회 준비 등에 대해 세심한 조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 법원 내부 ‘파격 인사’ 충격

법원 내부는 여전히 파격 인사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분위기다. 김 후보자보다 선배 기수인 일부 고위 법관이 용퇴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특히 진보성향 법관 모임 ‘우리법연구회’의 회장을 지낸 김 후보자의 뚜렷한 성향에 대해서는 법원 안팎에서 기대와 우려가 엇갈렸다. 법조계의 한 원로급 인사는 “대법원장은 특정 정치 진영의 논리에 휩쓸려서는 안 되는 자리”라며 “김 후보자가 사법부 수장으로서 올바른 처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한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관 독립을 강조해 온 김 후보자가 취임하면 판사들이 재판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지 않겠느냐”며 김 후보자의 개혁 성향에 기대감을 표시했다.

검찰도 김 후보자가 사법부에 어떤 색깔을 입혀 나갈지 큰 관심을 보였다. 한 검찰 간부는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에 취임하면 당장 형사재판부터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노동사건 등을 중심으로 진보적 색채의 판결이 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원로 법조인들은 김 후보자에게 사법부 수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줄 것을 주문했다.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75)은 “사법개혁은 한 사람이 단시간에 뚝딱 이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며 “원칙으로 돌아가 사법권의 독립을 굳건히 잘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진강 전 대법원 양형위원장(74)은 “대법원에서 권리 구제를 받고자 하는 국민들의 바람이 제대로 실현되도록, 국민에게 다가가는 사법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오혁 hyuk@donga.com·이호재·전주영 기자
#김명수#대법원장#후보자#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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