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예산정책처가 전문가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16∼2020년)에서 50개 저출산 정책 세부 항목을 분석한 결과 이 중 11개 정책이 ‘목표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이 저출산과 직접 관련이 없거나, 관련이 있더라도 방향 설정이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11개 정책에 들어간 지난해 예산은 8085억 원이었다. 정책의 효과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저출산’이라는 이름표가 붙으면 예산을 우선적으로 주고 보는 관행에서 생긴 문제점으로 분석된다.
○ 무늬만 저출산을 위한 대책들
24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의 50개 세부 계획 항목에 대해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았다. 평가 항목은 ①저출산 해결과 관련이 거의 없는 과제 ②추진 방향 및 수단이 잘못돼 효과가 의심스러운 과제 ③예산, 인력 투입이 부족해 효과가 의심스러운 과제 ④추진 방향 및 예산과 인력 투입도 적절하지 못한 과제 등 4개 항목이었다.
그 결과 전체 50대 세부 과제 가운데 이 4가지 항목 중 3항목 이상에서 상위 15위 안에 든 과제가 모두 11개나 됐다. 대표적인 예가 ‘청년의 기술창업활성화’ 정책이다. 이 제도는 대기업과 정부가 창업자금을 1 대 1로 마련한 뒤 청년들의 창업 및 해외 진출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기술력은 있지만 사업화에 힘들어하는 청년들을 위해 정부가 만든 정책이다. 지난해 정부는 이 정책에 200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4가지 평가 항목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 일자리 대책은 될 수 있지만 저출산 대책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지난해부터 제3차 저출산 기본계획에 따라 50개 세부 항목을 실행하기 위한 정책들을 모두 진행하고 있다. 저출산 예산은 이 계획을 토대로 구성하게 되는데, 계획된 예산은 5년간 모두 108조4000억 원 수준. 2016년과 2017년에 예정된 예산은 각각 20조4000억 원, 21조7000억 원에 달했다.
○ “저출산 영향평가 도입해야”
게다가 각 부처가 관련성이 많지 않은 사업들에도 저출산 꼬리표를 붙여 예산을 타내기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작 저출산 해결을 위해 시급하게 집행해야 할 정책이나 사업이 재원 부족으로 난항을 겪는 일이 적잖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선 정부가 부처별로 ‘저출산’ 정책을 모은 뒤 실효성을 따지지 않고 백화점 식으로 정책들을 나열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대신 주요 정책 및 법령에 ‘저출산 영향평가’ 항목을 넣는 방식 등을 통해 집중력 있게 저출산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저출산 영향평가란 정부가 추진하는 법령개정 사항, 대규모 재정 투입 정책에 대해 저출산 극복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의무적으로 확인하는 평가다. 일자리위원회가 도입하기로 한 고용영향평가와 유사한 방식이다.
정부는 1차 기본계획(2006∼2010년) 기간이던 2006년 저출산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며 저출산 영향평가 제도 도입을 추진했었다. 당시 정부는 국책연구원에 관련 보고서 작성을 맡기고, 여론 수렴 작업도 벌였다. 하지만 이내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부처 간 힘겨루기에서 저출산 대책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밀린 결과였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저출산 영향평가를 하면 보건복지부가 다른 부처의 용역을 건드려야 하는 상황이 오는데, 그 상황을 극복하기는 어려웠다”고 전했다.
그 결과 부처들의 저출산을 앞세운 예산 타먹기 경쟁은 줄어들지 않았고, 저출산 문제는 갈수록 악화됐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금까지는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에 대해 출산율 파급효과를 고려하지 않았지만, 영향평가를 시행하면 모든 정책에서 출산율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전 저출산고령화대책기획단 단장)은 “아무리 저출산이 사회문제라고 소리쳐 봐도 부처별, 국회 상임위별로 칸막이가 있어 정작 출산을 막는 제도가 생기기도 한다”며 “정부의 모든 역량을 저출산에 집중시킬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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