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국 백악관과 국방 당국자를 만나 전술핵 재배치 관련 언급을 한 배경이 주목된다. 정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얘기는 없었다”고 했고, 외교부는 한반도 비핵화가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파장이 예상된다. 화성-12형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도발 등 북한 김정은의 핵·미사일 폭주가 임계점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국내 일각의 전술핵 재배치 요구를 지렛대로 삼아 보다 확실한 북핵 억제 수단을 미국에 요청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 ‘핵(核)에는 핵으로…’, 다양한 전술핵 옵션 부상
전술핵 재배치는 북한 핵무장에 대응한 ‘초고강도 처방’이다. 핵공격은 어떤 재래식 무기로도 당해낼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제한적 핵 억제력을 갖자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전략폭격기와 전투기용 B-61, B-83 핵폭탄 및 공대지 순항미사일용 W-80 핵탄두 500여 기를 전술핵으로 운용 중이다. 군 당국자는 “한반도에 전술핵 재배치가 검토될 경우 B-61 핵폭탄이 가장 유력하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에 전술핵이 재배치되면 미국의 핵우산을 더 확실히 보장받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는 순간 핵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경고가 되기 때문이다. 군 안팎에선 전술핵 재배치 시한을 정한 뒤 대북 협상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배치 계획을 철회하고, 협상 실패 시 재배치를 하는 ‘조건부 한시적 전술핵 재배치론’을 비롯해 다양한 전술핵 옵션이 거론된다.
정치권에서도 전술핵 재배치가 주요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전술핵 배치’를 당론으로 정하고, 그 필요성과 추진 방법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최근 개최했다. 바른정당도 미국의 전술핵을 한국이 공동 사용하는 권한을 갖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식 핵 공유’를 주장했고, 국민의당 일각에서도 핵 공유와 전술핵 지지 목소리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외교·안보 핵심 브레인으로 활동했던 박선원 전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은 최근 북핵 억제력 강화를 위해 미군의 전술핵을 재반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는 “공식 라인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개인 의견”이라고 일축했다.
○ 미 전략자산 상시 순환배치 요구한 듯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가 북핵 억제를 위한 효과적 카드인 것은 분명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국에 전술핵을 들여오면 북한의 핵을 정당화하고 중국, 러시아와의 역내 핵 대결을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하면 비확산 질서의 근간을 흔들어 동북아 핵 도미노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고 미국은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한반도 비핵화 원칙 고수를 여러 차례 강조한 터라 설령 미국이 전술핵 배치를 요구해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따라서 송 장관의 발언은 국내의 전술핵 재배치 여론을 내세워 미 전략무기의 상시 순환배치 등 대한(對韓) 확장 억제력을 크게 강화하는 방안을 미국에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해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한국은 북핵 대응력 강화 차원에서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항모전단 등 미 전략무기의 한반도 상시 순환배치를 강력히 요청했지만 미 측의 확답을 얻지 못했다. 군 소식통은 “송 장관이 다양한 전략무기를 한반도에 최우선적으로 배치해줄 것을 미 측에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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