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核처럼 북핵 중재”… EU정상들 ‘트럼프 견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2일 03시 00분


EU, 이란 핵협상때 조정 능력 발휘
주도적 역할 獨, 국제위상 높아져… 메르켈-마크롱 “북핵 적극참여 준비”
트럼프의 ‘이란 핵타결 흔들기’ 제동… 유엔 안보리 기능 유지 포석도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유럽의 시각이 바뀌었다. 북핵 문제를 지금껏 지구 반대편 의제로 치부하던 각국 정상들이 앞다퉈 유럽연합(EU)의 ‘중재자 역할론’을 펴고 있다. 이란 핵협상 타결 방식을 벤치마킹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대북 제재와 관련해 유럽의 입지를 다지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기능을 유지하는 한편, 이란 핵협상을 흔들고 있는 미국의 리더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유럽의회는 12일(현지 시간) 프랑스 동북부 스트라스부르에서 본회의를 열고 북한의 6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등 북한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유럽의회가 북한 문제를 공식 의제로 채택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하고 6차 핵실험까지 강행하면서 유럽의 기류는 완전히 달라졌다.

앞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0일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유럽, 특히 독일은 (북핵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이란의 핵개발 동결과 대이란 제재 해제를 동시에 이뤄낸 핵합의안(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 대해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하며 “북핵 문제 해결도 이와 같은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외교장관이 “세계 반대편의 분쟁”이라며 중재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최근 외국 주재 프랑스대사와 정책 간담회에서 “프랑스는 평양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오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다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구상 역시 과거 이란 핵협상에서 보였던 프랑스 역할을 염두에 두고 있다. 영세 중립국인 스위스의 도리스 로이트하르트 대통령도 최근 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중재자로서 훌륭한 봉사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럽의 이 같은 입장 변화가 미국이 북핵 문제를 다루는 협의체로서 유엔 안보리를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벽에 부딪혀 원하는 대북 제재 수위를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군사적 해결책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처드 고원 유럽외교협회(ECFR) 연구원은 “유럽인들은 미국이 욱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란 핵협상 타결을 이끈 EU는 중재자 역할에 자신감도 가지고 있다. 당시 EU는 이란과 핵협상을 주선하는 역할을 맡아 회담 대표 국가들 사이의 갈등과 이해관계를 탁월하게 조정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던 독일 역시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유럽 지도자들이 이란 핵협상식 해법을 거론하는 데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마이 웨이’ 외교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독일, 프랑스의 평가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협상을 ‘재앙적’이라고 표현해 왔다. 이란 핵협상을 현행대로 유지하면 이란도 북한처럼 미국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유럽의 중재자 역할론은 미국의 이란 핵협상 흔들기를 저지할 수단이기도 하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북핵#eu#트럼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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