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가 軍위안부 모집에 개입한 증거 뚜렷”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0일 03시 00분


호사카 세종대 교수, 日자료 공개

1930년대 일본 정부가 당시 군 위안부 모집과 조직에 개입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일본 행정부 문서가 공개됐다.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수는 19일 오전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938년(쇼와·昭和 13년) 1월 내무성 경보국(警保局·현 경찰청) 문서 ‘상하이 파견군 내 육군위안소의 작부 모집에 관한 건’, ‘시국이용 부녀유괴 피의사건에 관한 건’과 같은 해 2월 18일 내무성 경보국장 지시가 담긴 ‘지나 도항 부녀 취급에 관한 건’의 내용을 우리말로 번역해 공개했다.

이날 호사카 교수가 소개한 경보국 문서 2건에 따르면 1938년 1월 일본 효고(兵庫)현과 와카야마(和歌山)현에서 부녀자 유괴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성매매 업주들은 “군으로부터 중국 상하이(上海) 파견군위안소에 작부를 보내달라는 의뢰를 받았고, 간사이(關西) 지방에선 (우리에게) 편의를 제공해 줬다”고 진술했다. 이에 경찰은 간사이 지방 오사카(大阪)현과 나가사키(長崎)현에 해당 진술의 사실 여부를 조회했다. 이후 두 현으로부터 각각 내무성과 주상하이 일본총영사관의 의뢰를 받아 (성매매 업주들에게) 승선 등 편의를 제공했다는 회신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호사카 교수는 “경보국 문서 2건은 일본 정부가 군의 위안부 조직을 도왔다는 증거”라며 “1945년 패전하기 전까지 일왕 직속의 일본 육군은 황군(皇軍)이라 불릴 정도로 권력이 강해 행정부는 군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같은 해 경보국장 지시를 담은 문서는 중국에 위안부로 보내는 여성들에 대해 “현지 상황을 볼 때 어쩔 수 없이 필요해 경찰도 특수하게 고려해줘야 한다”면서 “이 모집 및 주선이 제국(일본)의 위신에 상처를 입히고 황군의 명예를 더럽힐 수 있으니 ‘부녀매매에 관한 국제조약’의 취지와 어긋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호사카 교수는 “군 위안부 동원을 위해 부녀자를 납치하면 관련 국제조약을 맺은 일본의 체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일본 정부가 인지했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문서는 해당 조약에 어긋나지 않도록 ‘추업(醜業·매매춘)을 목적으로 하는 여성은 매춘부이고 만 21세 이상인 자로 호적상 부모의 승인을 받을 것’이라는 내무성이 결정한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호사카 교수는 “이 같은 조건은 당시 식민지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았고 일본에 있는 조선인은 중국에 데려가기 더 쉬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서 내용과 관련해 호사카 교수는 “1993년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고 동원의 강제성과 일본군의 책임을 인정한 고노 담화에서도 일본 정부의 책임은 빠졌다”며 “군에 편의를 제공한 행정부도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개된 문서들은 1997년 3월 ‘아시아여성기금’이 출간한 자료집 ‘정부조사 종군위안부 관계자료 집성’(전 5권)에 들어 있다. 1995년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과금’을 모금해 만들어진 민간기금인 아시아여성기금은 해산될 때까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모면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호사카 교수는 “아시아여성기금이 출판한 자료라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일본 정부 공문서임이 확실하다”며 “이 자료를 수집한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에게 공식 허가와 협력을 얻었다. 아직 한국에 정식으로 번역된 적이 없었던 자료”라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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