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법관생활’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3일 03시 00분


“재판 놓고 집단공격… 진영논리 병폐, 정치세력 침투하면 사법독립 무너져”
A4용지 9장 퇴임사서 쓴소리… ‘古木 소리 들으려면 속은 썩고 곧은 가지 부러져야’ 詩 인용도

2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퇴임식을 마친 뒤 차량에 오르기 전 법원 직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양 대법원장의 공식 임기는 24일 밤 12시까지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퇴임식을 마친 뒤 차량에 오르기 전 법원 직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양 대법원장의 공식 임기는 24일 밤 12시까지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정치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뤄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입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1층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후배 법관들에게 사법부 독립을 강조했다. 양 대법원장은 공식 임기가 24일 밤 12시까지지만 주말이 끼어 있는 점을 감안해 이날 퇴임식을 끝으로 모든 공식 업무를 마무리했다.

양 대법원장은 직접 준비해온 A4용지 9장 분량의 퇴임사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상충하는 가치관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갈수록 격화돼 위험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모든 사람을 우리 편 아니면 상대편으로 일률적으로 줄 세우는 이분법적 사고와 진영 논리의 병폐가 사회 곳곳을 물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법원 재판 결과에 대한 외부의 지나친 비판에 대해서도 양 대법원장은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재판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면 극언을 마다하지 않는, 도를 넘은 비난이 다반사로 일고 있고 폭력에 가까운 집단적 공격조차 빈발하고 있다”며 “(이는) 사법부가 당면한 큰 위기이며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의 기본 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사법부 독립의 토대인 법관 독립은 국민을 위한 일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양 대법원장은 “법관 독립의 원칙은 법관을 위한 제도가 아니고 법관에게 특혜나 특권을 주는 것도 아니다”며 “법관 독립은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제도로, 법관에게는 난관에 굴하지 않고 재판의 독립을 지켜야 할 헌법적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1975년 11월 1일에 법관으로 임용됐으니 오늘까지 거의 마흔두 해를 재직해온 셈”이라며 “올해로 69년이 된 사법 헌정사의 3분의 2에 가까운 기간을 사법부에 몸담으며 애환을 함께한 산 목격자”라고 자신의 법관 생활을 회고했다. 그는 대법원장으로 보낸 지난 6년에 대해서는 “국가 권력의 한 축인 사법부의 행정을 총괄하는 일은 단 하루도 마음 놓을 수 없는 가시밭길이었다”고 말했다.

후배 법관들에게 ‘모진 풍상을 견뎌온 고목’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도 털어놓았다. 양 대법원장은 오현 스님의 ‘고목 소리 들으려면’이란 시에서 “늙은 나무도/고목 소리 들으려면/속은 으레껏 썩고/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굽은 등걸에/매 맞은 자국들도 남아 있어야”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그는 “오래됐다고 다 고목은 아니지만 그럴 수 있다면 더없는 영광과 행복으로 여기겠다”고 말했다.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
#양승태#퇴임#대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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