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총수 ‘묻지마 호출’… 국감이 기업감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30일 03시 00분


삼성전자-현대차-SK 사장 등 정무위 증인 54명중 29명이 기업인… 추가채택 이어져 역대 최대 예상
‘증인 신청 실명제’ 역이용해… 자기 이름 홍보하려는 의원도

추석 연휴 직후인 다음 달 12∼31일 진행되는 문재인 정부의 첫 국정감사를 앞두고 기업인에 대한 ‘묻지 마 호출’ 관행이 재연되고 있다. 올해 국감장에 증인으로 불려나올 기업인은 대기업 총수를 포함해 수십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국정 전반을 들여다보고 행정부를 견제한다는 국감의 본래 취지가 퇴색되고 자칫 ‘기업 감사’로 흐를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환경노동위 등에서 채택한 증인 리스트에는 주요 기업인이 줄줄이 올라 있다.

정무위는 28일 여야 간사 협의를 통해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 윤갑한 현대자동차 사장, 임병용 GS건설 사장, 장동현 SK㈜ 사장 등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갓뚜기(God·신+오뚜기)’로 치켜세우며 모범기업으로 꼽은 오뚜기의 함영준 회장도 자유한국당의 요구로 증인에 포함됐다. 이날 합의한 증인 및 참고인 54명 가운데 53.7%인 29명이 기업인이다. 정무위 관계자는 “당초 여야가 각각 100여 명의 증인 및 참고인 신청 명단을 가져왔으나 기업 부담을 줄이자는 위원장의 당부로 그나마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위는 이병선 카카오 부사장, 조민수 코스트코코리아 대표, 윤동준 포스코에너지 대표, 나지용 두산중공업 부회장 등 기업인 9명을 증인과 참고인으로 정했다. 국회의 ‘단골 증인’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번에는 빠졌다. 산업위 관계자는 “당초 신 회장에게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피해를 들으려 했으나 피해 기업을 국감에 부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데 여야 간사가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과방위는 제조사와 이통사 간 ‘단말기 가격 담합 의혹’과 관련해 ‘줄소환’이 이뤄질 예정이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황창규 KT 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과 고동진 사장, 최상규 LG전자 한국영업본부장(사장)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국내 양대 포털을 이끄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도 포함됐다. 국감이 시작된 뒤에도 기업인에 대한 추가 증인 채택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세균 국회의장은 6일 국회 상임위원장 간담회에서 “이번 국감에서는 증인을 과도하게 채택하는 등 ‘갑질’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여야가 각각의 ‘입맛’에 따라 경쟁적으로 증인 및 참고인 요청을 하면서 이번 국감에서 기업인 호출이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담당 임원이나 실무자가 나와도 될 사안에까지 일단 대기업 총수를 불러 놓고 몰아세우는 ‘군기 잡기’식 국감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올해 처음으로 “어느 의원이 누구를, 왜 증인으로 신청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취지에서 ‘증인 신청 실명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를 역이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의원들이 앞다퉈 증인 명단을 공개하며 이른바 ‘홍보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정무위 소속인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은 17일 국감에서 증인으로 채택하겠다며 삼성전자 금호아시아나 네이버 등 대상 기업 10곳을 발표하기도 했다.

홍수영 gaea@donga.com·박성진 기자
#대기업총수#문재인 정부#국정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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