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김병욱 “실향민 고향마을 풍경 3D 재현… ‘망향의 한’ 달래 드렸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30일 03시 00분


‘북녘 고향집 찾기’ 프로그램 개발한 김병욱 북한개발연구소장

위성 정보를 이용해 실향민들에게 북한의 고향집을 인터넷으로 찾아주는 프로그램인 ‘엔케이파인더(NK-finder)’ 공동개발자인 김병욱 북한개발연구소장이 한 실향민의 북한 고향집 인근 지도를 보여주고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위성 정보를 이용해 실향민들에게 북한의 고향집을 인터넷으로 찾아주는 프로그램인 ‘엔케이파인더(NK-finder)’ 공동개발자인 김병욱 북한개발연구소장이 한 실향민의 북한 고향집 인근 지도를 보여주고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다섯 살 때 미아가 돼 길거리를 떠돌다 호주로 입양됐던 인도 출신 남성 사루 브리얼리가 실종 25년 만에 고향집을 찾아가 어머니와 극적으로 상봉했다는 얘기가 2012년 소개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애틋한 사연 못지않게 그가 고향집을 찾아간 방법도 눈길을 끌었다.

어렴풋한 어릴 적 동네의 기억을 떠올리며 구글의 위성지도인 ‘구글어스’를 통해 무려 5년 동안 검색한 끝에 고향집을 찾았던 것. 이 이야기는 영화 ‘라이언’으로 만들어져 올해 국내 개봉되기도 했다.

올 추석에 이 남성처럼 위성지도 등을 통해 애틋하게 고향을 접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도 있다. 북한에 있는 고향을 찾을 수 없는 실향민과 탈북자들이다.

최근에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비교적 생생한 기억 때문에 위성지도에서 고향 동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6·25전쟁 전후 온 실향민들은 벌써 70년 안팎의 시간이 흘렀다. 기억이 희미해졌을 뿐만 아니라 북한 땅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이 때문에 쉽게 위성지도를 검색하는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고향집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딱한 현실을 감안해 최근 개발된 게 위성지도를 통해 실향민의 고향집을 찾아주는 ‘엔케이파인더(NK-finder)’라는 프로그램이다. 개발자인 김병욱 북한개발연구소장을 26일 서울 중구 충무로에 있는 연구소에서 만나 설명을 들었다.

“누구는 ‘구글로 그냥 찾으면 되지 무슨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었나’ 그러는데 그건 실향민들과 북한 실정을 잘 모르는 분들이 하는 말이다.”

김 소장에 따르면 실향민들은 주로 일제강점기 집주소를 갖고 내려왔다. 하지만 이 주소를 구글에 넣어도 제대로 검색이 되지 않는다. 구글은 현재 국제좌표를 기준으로 작동돼 일제강점기 주소를 읽지 못한다. 그렇다고 실향민들이 옛 모습의 기억을 떠올려 찾으려 해도 만만치 않다. 북한 또한 70년 세월 동안 강산이 여러 번 변했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북한이 토지 개간 정책을 펼쳤고, 행정단위 또한 ‘면’에서 ‘리’로 바꿨다. 중소형 발전소 건설에 따라 강 유역이 변했고, 고속도로 건설 등으로 주변 풍경이 확 바뀐 상태”라고 설명했다. 실향민들이 수십 년간 간직해온 집주소만으로는 고향집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 된 것.

탈북자 출신 석박사들이 모여 주로 북한 경제를 연구하는 북한개발연구소는 이런 사연을 접하고 지난해 5월 통일박람회(통일부 주최)에서 ‘고향집을 찾아줍니다’ 행사를 열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 프로그램이 없어 실향민의 주소를 지적도, 위성지도와 일일이 대조해 보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고향집 찾기에 나섰다. 사흘 행사 기간에 15명이 “집을 찾아달라”고 문의했다.

이후 북한개발연구소는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북한에 있는 주소를 찾기 위해 직접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차득기 한국국토정보공사 공간정보연구원장이 취지에 공감해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다. 실향민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관련 지도와 서적, 고향 땅에 대한 증언, 그리고 개발비를 십시일반 보탰다. 이렇게 해서 1년 3개월 만에 완성된 ‘엔케이파인더’는 7월 저작권 등록까지 마쳤다.

새 프로그램은 옛 주소를 입력하면 구글과 연동되는 현재 국제좌표로 바꿔줘 쉽게 현재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입력에서 분석까지 30분이면 위치 확인이 끝난다. 이후 해당 지역의 모습을 신청자 요구에 맞게 지도나 액자, 3D 모형 등으로 제작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달라진 고향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고, 후대에 남기고자 하는 게 목적이다.

2015년 10월 이후 이산가족 상봉이 2년 동안 꽁꽁 막혀 있는 상황에서 이번 프로그램 개발은 실향민들에게 적지 않은 위안이 될 듯하다. 이산가족 상봉은 북측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고향집 찾기’는 새 프로그램으로 언제든 가능하게 됐다.

북한개발연구소는 다음 달 13∼15일 서울역 광장 등에서 열리는 평화와 통일 프로그램 ‘평화로 2017’(옛 통일박람회)에 다시 부스를 열어 고향집 찾기 행사를 열 예정이다. 다만 고향집 확인 1건당 지적도 발급 및 스캔비, 인건비 등이 추가돼 비용이 30만 원 가까이 드는 실정이다. 연구소는 지난 개발 과정에 참여한 실향민들에게 무료로 위치 확인을 해줬지만 앞으로는 유료화가 불가피하다고 한다. 일각에선 저소득층 실향민들을 위해서 정부가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02년 탈북한 김 소장은 이번 프로그램이 실향민 선배님들을 위한 선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실향민과 탈북자들은 관계가 별로 좋지 않다. 앞서 남한에 와서 고생한 선배님들은 ‘국가 지원도 받는데 왜 적응을 못 하냐’고 탈북자를 탓하기도 한다.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민 실향민들에게 탈북자들이 사기를 치는 사건도 적지 않았다. 이번 프로그램으로 많은 선배님들이 고향집을 확인해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을 가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김병욱#북녘 고향집 찾기#실향민#북한개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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