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동아/10월 9일]1983년 전두환 노린 북한 폭탄, 아웅산 묘지서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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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10월 8일 16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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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줄 왼쪽부터 이기백 합동참모의장, 심상우 국회의원, 함병춘 청와대 비서실장, 이계철 주 미얀마 한국 대사, 서상철 동력자원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이범석 외무부(현 외교부) 장관, 서석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맨 앞줄 왼쪽부터 이기백 합동참모의장, 심상우 국회의원, 함병춘 청와대 비서실장, 이계철 주 미얀마 한국 대사, 서상철 동력자원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이범석 외무부(현 외교부) 장관, 서석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1983년 10월 9일은 동남아·대양주 순방을 떠난 전두환 당시 대통령(86)이 첫 방문지였던 버마(현 미얀마)에 도착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전 대통령 일행은 이날 오전 버마 수도 랑군(현 양곤)에 있는 ‘버마의 국부(國父)’ 아웅산 장군(1915~47)의 묘지를 참배할 예정이었다. 위 사진은 정부 각료들이 아웅산 묘지에서 대통령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장면이다.

안타깝게도 이 사진은 이들이 이승에 남긴 마지막 사진이 됐다. 이 사진을 찍고 나서 바로 몇 초 후 북한에서 설치한 폭탄이 터졌기 때문이다. 맨 앞줄에 자리 잡은 8명 중 맨 왼쪽에 있는 이기백 당시 합동참모의장, 그리고 사진 뒤쪽 맨 왼편에 보이는 최재욱 청와대 공보 비서관 등 두 명 만 목숨을 건졌고 나머지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북한에서 원래 노렸던 ‘타깃’은 물론 전 대통령이었다. 원래 전 대통령은 이날 10시 30분에 이 묘지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차량 정체로 도착이 늦어지면서 대통령 부부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아웅산 묘지 폭탄 테러 소식을 전한 1983년 10월 9일 동아일보 호외(號外)
아웅산 묘지 폭탄 테러 소식을 전한 1983년 10월 9일 동아일보 호외(號外)

전 전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 북한 테러범들이 폭탄을 터뜨린 이유는 뭐였을까. 이에 대해서는 아웅산 묘지에 제일 먼저 도착한 이계철 당시 주 미얀마 한국 대사가 전 대통령과 비슷한 헤어스타일(?)이었던 걸 이유로 꼽는 이들이 많다. 안경까지 써 전 전 대통령과 더욱 비슷해 보이는 이 대사가 태극기가 펄럭이는 고급 승용차에서 내리자 버마 나팔수가 진혼곡(‘애국가’였다는 의견도 있다) 연주를 시작했고, 북한에선 이 나팔 소리를 테러 기점으로 잡았기 때문에 폭탄을 먼저 터뜨렸다는 것이다.

이중현 기자가 생전에 찍은 사진을 소개한 1983년 10월 12일자 동아일보
이중현 기자가 생전에 찍은 사진을 소개한 1983년 10월 12일자 동아일보

함병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도착한 걸 보고 북한 공작원들이 전 대통령이 도착한 것으로 착각했다는 의견도 있다. 보통 비서실장은 대통령과 함께 움직이는데다 함 실장 역시 전 대통령과 헤어스타일(?)이 유사했기 때문이다. 이 설(說) 역시 버마 나팔수가 먼저 착각했고 북한에서 나팔 소리를 기점으로 폭탄을 터뜨린 것으로 설명한다.

이 자리에서는 동아일보 사진부 소속이던 이중현 기자도 순직했다. 이 기자는 당시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취재차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 파견 갔다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풀(pool) 기자’로 대통령을 따라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관련기사: 소련군, 대한항공 여객기 미사일 격추

동아일보는 사건 발생 사흘 후인 그달 12일자 지면을 통해 이 기자가 생전에 찍었던 사진을 간추려 소개했다. 그러면서 “폭발 마지막 순간까지 사진을 찍다 산화한 고 이 기자의 마지막 작품은 카메라가 부서져 싣지 못해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출국 전 카메라 렌즈를 새 걸로 바꾸면서 “가장 깊이 있는 사진을 찍어 오겠다”고 주변에 말했지만 끝내 사진을 세상에 선보이지 못했다.

아웅산 묘지 테러로 순직한 이중현 기자(맨 오른쪽). 맨 왼쪽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운동가로 언급한 장덕준 논설기자(1920년 순직). 가운데는 1966년 11월 베트남전쟁 취재 중 순직한 백광남 기자.
아웅산 묘지 테러로 순직한 이중현 기자(맨 오른쪽). 맨 왼쪽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운동가로 언급한 장덕준 논설기자(1920년 순직). 가운데는 1966년 11월 베트남전쟁 취재 중 순직한 백광남 기자.

1983년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현재 동아일보 기자들 역시 이 기자의 얼굴을 알고 있다. 지금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14층 동아일보 편집국에는 다른 순직 기자 두 명과 함께 이 기자의 사진이 걸려 있어서다.

맨 위 사진 촬영 당시 앞줄에 서 있던 사람 중에서 합참의장이던 이기백 대장만 살아남은 건 그가 장교 정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육군사관학교에 전시 중인 이 옷에 붙어 있는 각종 금속제 휘장, 약장이 방탄복 구실을 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 이 사건 때 중상을 입은 이 대장을 긴급 후송한 인물이 훗날 특전사령관을 지내는 전인범 당시 중위(예비역 육군 중장)였다. 전 전 특전사령관은 올해 2월 ‘문재인 캠프’ 합류하려다 “우리 집사람이 비리가 있었다면 권총으로 쏴 죽였을 겁니다”라는 발언에 끝내 발목이 잡혔던 인물이기도 하다.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문재인 캡프 합류 소식을 전한 2017년 2월 7일자 동아일보. 아웅산 테러 때 이 의장을 구했던 이력도 
함께 전하고 있다. 전 전 특정사령관의 어머니 홍숙자 씨는 1987년 대통령 선거 출마로 한국 최초 여성 대통령 후보로도 이름을 
남기고 있다.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문재인 캡프 합류 소식을 전한 2017년 2월 7일자 동아일보. 아웅산 테러 때 이 의장을 구했던 이력도 함께 전하고 있다. 전 전 특정사령관의 어머니 홍숙자 씨는 1987년 대통령 선거 출마로 한국 최초 여성 대통령 후보로도 이름을 남기고 있다.

심상우 의원은 국회의원으로는 유일하게 이 테러 때 목숨을 잃었다. 심 의원은 당시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 자격으로 전 대통령과 동행했다. 민정당 총재가 바로 전 대통령이었다. 심 의원은 방송인 심현섭 씨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호남(광주) 출신인 심 씨가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돕는 등 보수적인 정치색을 드러냈던 게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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