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이를 소탕해나갈 것입니다.”
토요일이던 1990년 10월 13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사진)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새질서 새생활 실천모임’을 주재하는 자리에서 대(對) 국민 연설을 통해 이 같이 선언했다. 이제는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한 ‘범죄와(의) 전쟁’은 그렇게 첫 포성을 울렸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6월 8일 이미 법질서 확립에 대한 비상한 결의를 표명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한 상태였다. 또 전임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도 삼청교육대 등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치안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아주 새삼스러운 내용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범죄와 전쟁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건 국면 전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 근무 중 탈영한 윤석양 이병(당시 24세)은 10월 4일 기자회견을 열고 “보안사에서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 교수 재야인사 학생 등 1300명을 상대로 사찰을 벌이고 있다”고 폭로했다. 당시 윤 이병이 공개한 자료에는 사찰 대상자의 자택 구조, 진입 및 도주 경로, 친인척 주거지 등이 포함돼 있었다. 비상계엄 상황에서 이들을 즉시 체포할 수 있도록 미리 자료를 작성했던 것이다.
심지어 3당 합당을 통해 여당 정치인으로 변신한 김영삼 당시 민주자유당 대표 최고위원(제14대 대통령)도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명색이 집권당 대표인 나까지 사찰 대상이라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노태우 정권을 압박했다.
국민적 분노가 들끓은 게 당연한 일. 이를 무마하고자 노 전 대통령이 꺼낸 카드가 바로 ‘범죄와의 전쟁’이었다. 대통령 직접 지시 사항이었기 때문에 경찰은 당연히 성과를 내야했다. 그 과정에서 인권 침해 사례도 적지 않게 발생한 건 물론이다.
또 이 전쟁은 국면전환용 카드였기에 실적만큼 홍보도 중요했다. 그해 11월 15일자 동아일보는 “‘범죄와 전쟁’ 아닌 ‘홍보물과의 전쟁’”이라며 “경북도내 일선 시장·군수들은 ‘근무자세가 해이한 사람은 직위해제 시키겠다’는 김우현 지사의 경고에 따라 현수막과 입간판 등 가두 홍보물이 얼마나 설치됐는지 현장 확인을 하느라 야단”이라고 전했다.
‘범죄와의 전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은 “(이 전쟁 결과라) 전국의 폭력조직은 거의 와해되었으며 실질적으로 범죄발생 건수도 감소하기도 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 평가는 ‘2세대 조폭’에는 확실히 유효하다.
하지만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펴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세대 조폭’은 기업 인수합병(M&A), 금융업, 건설업 등 경찰 단속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새 영토’를 구축한 상태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부제처럼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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