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 분야 국정감사장. 난데없이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등 3명의 동영상이 등장했다. 먼저 1998년 9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울진원전 3호기 준공식에서 “한국형 원전의 우수한 성능을 국내외에 입증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발언하는 축사, 2007년 1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 착공식에 참석해 “한국 원전은 세계 최고의 안전성을 갖고 있다”고 한 발언이 잇따라 소개됐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6월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나와 신규 원전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말한 장면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신고리 원전 5, 6호기의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이 문 대통령과 같은 정파 출신인 전직 대통령 2명을 끌어들인 것이다.
반면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해외자원 개발의 매장량 등이 부풀려졌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해외자원 개발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국민의당 이찬열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인 ‘대통령의 시간’을 직접 들고, 해외자원 개발사업의 회수율이 부풀려졌다는 부분을 그대로 읽었다. 이 국감장에서만 전·현직 대통령 4명의 이름이 하루 종일 오르내린 것이다.
같은 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교육부 국정감사의 쟁점은 박근혜 정부 때 추진한 ‘국정 역사 교과서’였다. 민주당은 국정 교과서의 추진 과정을 확인할 자료를 더 많이 내놓으라고 교육부를 압박했고, 한국당은 “편향된 진상조사위는 폐지해야 옳다”며 김상곤 부총리를 몰아붙였다. 대법원 국감에서는 16일 밤 12시 구속기한이 끝나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영장 재청구와 법원의 발부 여부를 놓고 종일 공방이 오갔다.
올해 국감은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라는 헌정 초유의 사태 끝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 만에 시작됐다. 여기에 적폐 청산과 정치보복 프레임까지 얽히면서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 나아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 등 20년 치의 과거와 현재가 모두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국감 때 야당으로서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을 집중 해부한 여당은 전선을 이명박 정부로 넓혔고, 보수야당은 정부 여당을 견제할 만한 소재가 마땅치 않자 여당의 공격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맞불을 놓았기 때문이다. 입법부의 행정부 감독이라는 국감의 원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과거와 현재’의 고래 싸움에 피감기관만 새우등 터지는 형국인 셈이다.
국감에 앞서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번 국감은 헌정 질서를 유린한 국정 농단의 실체를 국민 앞에 드러내고 바로잡는 자리”라고 말했고,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번 국감은 문재인 정권의 무능을 심판하고,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는 전쟁터다. 문재인 정권의 무능과 신적폐,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원조 적폐 등을 심판하기 위한 총력 체제를 가동하겠다”고 맞섰다.
공교롭게도 1988년 민주화와 함께 부활한 국감은 올해로 30번째를 맞았다. 그 사이 공과가 있었지만 ‘국감 무용론’도 적지 않았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지난해 촛불시위와 탄핵사태의 요구는 판 자체를 바꾸라는 것”이라며 “새로운 관행을 국회가 보여줄 기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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