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측은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단독 정상회담에서 전격적으로 비무장지대(DMZ) 방문을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과연 즉석에서 결정된 깜짝쇼였을까. 백악관 관계자는 8일 기자들이 ‘DMZ 방문을 계획한 시점’을 묻자 “밝힐 수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경호 전문가들은 사전에 양국이 일정을 협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대통령 현장 방문에 즉석 결정이 힘든 것은 바로 경호 문제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두 정상의 예상 이동 경로는 물론이고 당일 기상 상황 등을 확인하고 두 조직이 긴밀하게 협조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경호를 책임지는 대통령경호처와 미국 비밀경호국(Secret Service)이 1박 2일 방한 기간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숨 가쁘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기간 경호처와 비밀경호국은 혹시 모를 북한의 테러 가능성에 철저하게 대비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를 겨냥한 테러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안전을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대통령 해외 방문 때마다 비밀경호국 팀이 사전 현장조사를 통해 안전을 확보한다. 우리는 한국 방문 때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력까지 투입한다”고 답했다.
실제 비밀경호국은 트럼프 대통령 입국 2∼3주 전부터 사전 답사를 했다. 연합 경호계획을 세우고 일정에 따른 예상 동선을 경호처와 함께 확인했다. 영화 ‘사선에서’의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사복 차림으로 대통령을 근접 경호하는 팀과 함께 군복 차림에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대원들도 주변에 포진된다. 박준석 용인대 경호학과 교수는 “광화문광장이나 국회 앞에서도 알게 모르게 사복을 입은 미국 경호원들이 활동했을 것”이라며 “경호 대상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사람들의 동선 파악은 기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경호 전문가는 “비밀경호국 내에 한국계 직원도 있고, 6월 문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 때도 협업한 사례가 있어 호흡이 잘 맞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경호 책임은 초대국 경호 조직에 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 방한 때도 대통령경호처가 중심이 돼 움직였다. 8일 아침 DMZ 방문 때 문 대통령 헬기가 오전 7시 1분에 이륙하고, 트럼프 대통령 헬기가 42분 뒤에 출발한 것은 ‘대통령 헬기 비행 시 다른 비행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진행한다’는 우리 측 경호 원칙 때문이었다.
경호처와 비밀경호국은 경호 원칙에 따라 사전에 동선을 결정하지만 돌발 상황에 즉석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7일 청와대 국빈만찬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트럼프 대통령 일행이 반미 시위대가 던진 쓰레기를 피해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역주행한 것이나, 8일 국회 방문 때 반대 시위대를 피해 동문으로 진입한 것도 탄력적으로 대응한 결과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동안 미국과 여러 차례 연합 경호를 진행해 우리 경호 수준이 높다는 것을 비밀경호국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의견 충돌 없이 무사히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트럼프 정부에서 비밀경호국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조직이다. 경호국 인원은 8월 말 기준으로 6800명에 이르며 연간 18억 달러(약 2조 원)의 예산을 지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말에 자신 소유의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를 찾을 때마다 300만 달러(약 34억 원)의 예산을 지출해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비밀경호국은 흥미로운 출범 역사도 갖고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자신이 피격된 날(1865년 4월 14일) 비밀경호국 창설 법안에 서명했다. 그해 7월 출범한 이 조직은 당초 재무부 산하에서 위조지폐 색출 업무를 맡아왔지만 1901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대통령 경호까지 맡게 됐다. 이후 2003년 뉴욕에서 발생한 9·11테러 이후 국토안보국 산하로 편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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