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은 4개월 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나란히 붉은색 넥타이를 맨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회담 분위기에 대해 “거의 만점”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시 주석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철회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불씨를 남기기도 했다.
○ 일단 한중 관계 정상화는 합의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은 예정된 시간을 20분가량 넘긴 50분간의 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궁극적으로 대화를 통해 평화적 방식으로 해결하자”는 데 합의했다. 또 한중 간 북핵 등 전략 대화를 위한 새로운 협의체도 구성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 동행하지 않았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이날 베트남에 합류해 양제츠(楊潔호) 국무위원과 회담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리더십 강화를 천명한 이른바 ‘시진핑 사상’도 언급됐다. 시 주석은 “오늘 회담이 한반도 문제에 있어 양측 협력과 리더십 발휘에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의) 새 시대 비전 실현 과정에서 한중관계의 새 시대를 열어 나가자”고 말했다.
두 정상은 북핵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엔 동의했지만 구체적 해법은 여전히 이견을 보였다. 시 주석은 북한 도발 중단과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 중단하는 이른바 ‘쌍중단(雙中斷)’ 해법을 강조했다. “한국이 북한과 다시 대화와 접촉을 시작하고 화해와 협력을 회복하길 권한다”고도 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북한이 추가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 복귀를 선언하면 단계적으로 보상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도발에 나서지 않는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안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일단 한중 정상이 관계 복원을 공식화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노영민 주중 대사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모든 문제가 완전하게 해소됐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한중 관계가 사드 문제로 야기됐던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 ‘봉인’된 사드 문제 다시 꺼낸 시 주석
하지만 시 주석이 회담에서 당초 예상과는 달리 사드 철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청와대는 회담 후 사드 문제에 대해 “두 정상이 지난달 발표한 합의문을 평가했다”고만 밝혔다. 그러나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시 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사드와 관련한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한국에 (사드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와 결정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 주석은 사드 문제에 대해 “중대한 이해관계 문제에서 양측이 역사적 책임에 바탕을 둬 중한 관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양국 인민에 대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드 봉합에 따른 한중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면서도 종국적으로는 한국이 사드를 철수해야 한다는 압박도 빼놓지 않은 것이다.
이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시 주석의 발언은 기존 합의문의 입장과 같다. 사드 문제를 두고 이제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이 중요하다는 취지”라며 진화에 나섰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 주석이 사드 철회 입장을 당장 거두긴 어렵다. 오히려 사드 문제를 봉인하기로 한 합의가 본인 의지라는 점을 확인해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초 회담 의제로 다루지 않기로 한 사드 문제를 시 주석이 재차 거론한 것을 두고 지난달 사드 합의 과정에서 중국이 요구했던 사드 추가 배치 불가 등 이른바 ‘3노(NO)’ 이행을 한국에 압박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시 주석과의 회동을 마친 문 대통령은 12일 ‘아세안+3’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필리핀 마닐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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