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4일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73)과 이병호 전 원장(77)에 대해 동시에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강수를 둔 것은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48)의 사망 이후 거세진 ‘적폐청산’ 수사에 대한 비판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이날 긴급체포한 이병기 전 원장(70)에 대해서도 15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어서 박근혜 정부 국정원장 3명 전원이 구속될 위기에 처했다.
○ “특수활동비 상납은 뇌물 사건”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남 전 원장 등에게 뇌물공여와 국고손실 혐의를 적용했다. 이는 국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의 지시로 청와대에 전달한 40여억 원은 뇌물이며 이번 사건은 정치보복이 아니라 부패범죄라는 의미다. “전 정권 국정원장 3명을 동시에 처벌하는 건 가혹하다” “특활비 상납은 이전 정권부터 이어온 관행”이라는 검찰 안팎의 비판에 구속영장으로 답한 것이다. 검찰은 수사를 시작할 때부터 “국고를 빼돌린 행위는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강경한 자세였다.
특활비를 상납받은 사람이 박 전 대통령이라는 점도 구속영장 청구에 중요한 이유가 됐다. 뇌물 공여자인 남 전 원장 등을 구속해야 향후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내는 데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남 전 원장 등에 대해 서둘러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에는 이날 오전 3시경 이병기 전 원장이 긴급체포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수사팀은 전날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던 이병기 전 원장이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보이자 불상사를 막기 위해 긴급체포를 했다고 한다. 그 밖에 청와대에서 돈 전달 창구 역할을 한 안봉근 전 대통령국정홍보비서관(51)과 이재만 전 대통령총무비서관(51)이 이미 구속된 점도 고려됐다.
이병기 전 원장은 2014년 6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국정원장을 지낸 뒤 박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은 이병기 전 원장이 국정원장 때는 특활비를 건네는 위치에, 비서실장일 때는 상납을 받는 쪽에 있었으므로 다른 두 원장과 비교할 때 책임이 크다고 보고 있다. 또 남 전 원장 시절 월 5000만 원대였던 특활비 상납 액수는 이병기 전 원장 때 월 1억 원으로 늘어났다.
○ “특활비가 불법 정치자금으로 쓰여”
검찰은 남 전 원장에게는 대기업을 압박해 보수단체에 불법 지원을 하도록 한 혐의(국정원법상 직권남용), 이병호 전 원장에게는 지난해 총선 때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실의 비공개 여론조사 비용 5억 원을 대납하도록 한 혐의(국정원법상 정치관여 금지)를 적용했다. 국정원이 상납한 돈이 청와대에서 불법적인 정치 활동에 쓰였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남 전 원장 등의 구속 여부가 결정되면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돈의 사용처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남 전 원장 등이 모두 국정원 특활비 상납 과정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다만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재판 보이콧’을 선언하고 법정에도 불출석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 조사 방식에 대해 고민 중이다. 박 전 대통령이 조사에 불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박 전 대통령을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매달 수백만 원씩 특활비를 받아 쓴 것으로 알려진 현기환(58·구속 기소), 조윤선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51)도 조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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