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A 의원은 최근 가슴을 쓸어내렸다. 국가정보원이 여야 의원에게도 특수활동비를 상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아찔한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활동을 마친 직후였다. 한 국정원 요원이 “(정부를) 잘 방어해줘서 고맙다”며 500만 원이 담긴 봉투를 건네더라는 것. A 의원은 “당시 거절한 게 천만다행이다. 사정(司正) 광풍 속에선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전병헌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과 현역 의원들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자 여의도 정치권이 뒤숭숭하다. “검찰 수사에 야당 의원이 15명 연루돼 있다”는 얘기가 한국당 내부에서 흘러나오는가 하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엔 수개월 묵힌 ‘여당 리스트’가 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특히 한국당은 전병헌 전 정무수석의 사퇴로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처지가 됐다는 분위기다. 앞서 홍준표 대표는 청와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초청 만찬 때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청와대에서 유일한 화합파인 전 수석을 왜 치느냐. 그러면 결국 우리 의원들한테 (검찰의 칼끝이) 향할 것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에서도 검찰 수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요즘 검찰을 보면 영화 ‘더킹’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선 검사가 정권의 흥망성쇠에 따라 여야의 비리가 담긴 수사 파일을 골라잡는 장면이 나온다. 전 전 수석 수사에 대해서도 검찰의 조직 논리에 따른 ‘여론 무마용’ 카드라는 해석이 나왔다. 변창훈 검사의 자살 이후 ‘적폐청산 수사’에 대한 야당의 반발이 커지자 수사를 치고 나갈 동력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여야 의원에 대한 국정원 특활비 살포설을 두고선 ‘국정원 작업설’ ‘친박 작업설’ 등 다양한 음모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 여권 인사는 “국회가 대대적인 국정원 예산 손보기에 들어가자 의도적으로 국회를 압박하기 위해 국정원이 작업한 정보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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